I필터를 설치하겠습니까?
종종 제목만 보고 읽어보기 전에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한번 상상해보는 버릇이 있다.
어떨때는 예상이 맞아서 기분좋은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고,
어떨때는 완전히 다른 예상이 되어서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을 접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이번에 읽은 작품 'I필터를 설치하겠습니까?'는 명백하게 후자였다.
처음에 책을 집어들고 내가 생각해본 내용은...
음, 뭔가 너무 까불거리는 MBTI에서 E 성향인 아이가 자기 성향을 I로 바꾸는 뭔가를 손에 넣고
자신의 일반적인 일상과 다른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을 다룬 이야기가 아닐까?
뭐, 그런 식으로 상상을 하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완전히 상관없는 내용이었다. 하하하...
웃픈 망상의 실수는 잠시 웃어 넘기고,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아이들의 도시전설처럼 돌아다니는 보정 어플인 I필터에 관련된 내용이다.
서연은 항상 자기와 비교당하는 언니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이런저런 외모 보정 필터를
사용해 보지만, 뭔가 만족스럽지는 않고 그러다 우연히 I필터라는 어플을 받게 된다.
그걸 사용한 순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보정이 가능한 것에 놀라고
금새 그 어플에 빠져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바라보는 의문의 시선과
자기 주변에서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하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뭔가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존재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생겨난 원인은 무엇이고, 모든 것의 결말은 어디로 향해 가는 걸까?
아이들의 도시전설과 같은 미스터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작품은 근래에 아이들에게 많이 사랑받는 청소년 소설을 연달아 내놓고 있는
범유진 작가님의 작품이다. 최신작 쉬프팅으로도 올해 여름 독자들과 만나서 익숙하신 분도 있으실 것이다.
작가님의 글을 읽어보면, 왜 그분의 글들이 아이들에게 사랑받는지 알 것 같다.
지금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와 이슈를 아이들의 시선으로 가장 흥미롭게 담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성세대들이라면 자칫 권선징악이나 인간승리의 찬가로 흐르기 쉬운 이야기를
아이들의 시선으로 맞춰서 획일적이고 진부하지 않은 흐름으로 이끌어간다.
결말에 나오는 이중반전을 보면서 조금 소름이 돋은 독자들도 분명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소재의 활용에 있어서도 너무나 지금 아이들의 시선에 맞추어진 트렌드한 소재들을 활용하고 있다.
이제는 카톡도 올드하게 여겨지고, 인스타와 유투브가 메신저가 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필터와 보정과 태그와 좋아요는 어른들에게는 아직 생소해도 아이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다.
그런 당연한 트렌드를 이 작품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의 흐름에 있어서도 신선함과 작가님의 역량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판타지와 초현실적인 상황을 잘하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작품으로 그걸 확인하게 되었다.
어플이라는 첨단의 기기 속에서 나타나는 도시괴담 같은 어반 호러.
근데 그것도 두려워하기 보다는 호기심이 앞서고, 위험성에도 이득을 먼저 생각하며 벌어지는
등장인물들의 행보가 잘 어우러져 잘 짜여진 스토리에 배여들었다.
전체적으로 잘 짜여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미스터리 스릴러였다.
항상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써야한다고 하면서도,
항상 막히면 고전에 먼저 눈이 돌아가는 작가 지망생 입장에서 보면 배울 것이 정말 많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네타일지 모르지만 어플로 보정된 진짜가 아닌 자신을 더 자식으로 여기는 부모를 보면서,
마냥 웃을수는 없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 작품이었고.
오늘부터 더위는 조금 물러갔지만, 아직 여름의 여운을 느끼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한번, 내가 아닌 보정된 자신과 만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염두에 두고
한번 이 책을 집어들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I필터를설치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