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밥을 사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밥을 산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밥을 사는 건 일종의 애정 표현이다. 바쁜 시간을 내어 나와 함께 해주는 시간에 대한 보답과 같은 거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데는 시간과 돈을 쓰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에게 밥을 사는 건 빚지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다.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사주면 그것을 갚아야 하는 의무감 같은 게 남는 게 싫고, 내가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건 더더욱 싫어서다. 일종의 '이거나 먹고 떨어져. 내 인생에서 꺼져.' 같은 거다.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지만 그 누구도 나서기 싫어할 때(예를 들면 조별 모임에서 조장 같은 것)도 내가 주로 한다고 한다. 나도 하기 싫은 걸 다른 누군가가 해주길 기다리는 그 몇 초의 시간을 못 견디겠는 거다. 그 몇 초간의 정적은 내 자신이 몰염치하다고 자각하는 순간인 것 같아서.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같은 걸 한 적이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잘 구분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 물음에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잘해주세요.'라고 답했다. 상대방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면 절친한 친구를 얻게 되겠지만, 좋은 사람이 아닌 경우라면 그 본모습을 더 빨리 드러내게 될 테니 결과가 어떻든 남는 장사다. 상대방이 나쁜 사람인지도 모르고 친밀감을 쌓고 애정을 잔뜩 준 다음에 실체를 알게 되면 무척이나 슬픈데, 그 시간을 조금 더 앞당기는 거니까 가성비를 따져보았을 때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이런 나를 보고 호구라도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호구 같다는 말을 들은 적도 꽤 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영특하게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받게 될 상처를 미리 막고, 싫은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고, 상대가 나에 대해 조금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서 하는 행동이니까. 무엇보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다. 호구 소리 듣더라도 내 마음이 편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이 정도 손해는 감수한다. 무언가 손해를 본다면 돈을 잃는 것이 내겐 가장 덜 아픈 상처이기도 하니까.
사실 일명 '호구'라는 불리는 사람들은 앞에서는 헤헤 웃는 바보로 비칠지 몰라도 뒤에서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레이더망을 굴리며 사람들을 살필지도 모른다. 어리숙해 보이니 누군가 이용하려고 할 때면 알면서도 상대방이 어디까지 어떻게 하나 보자 하면서 허허 웃으며 속아주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 다칠 정도로 상대가 요구하면 그를 나의 바운더리에서 내치기도 하는 세상 똑똑한 사람일지도 모르는 거다. 서울시 호구 대표로서 말한다. 그러니까 호구 무시하지 마라. 호구 같다고 상처 주지 말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