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0
하필이면
꽃으로 왔더냐.
다른 꽃들처럼
해 아래 당당하게 피고 지지
하필이면
해 뜨면 이내 녹아내릴
눈물로 왔더냐..
"인연이라 하더이다"
그리고 11년 후 오늘.
2015년의 어느 차가운 새벽, 유리창에 핀 성에꽃을 보며 나는 물었었다. 왜 하필이면 따스한 햇볕 아래 당당히 피는 꽃이 아니라, 해가 뜨면 이내 녹아 사라질 눈물의 형상으로 왔느냐고. 그때 꾹꾹 눌러썼던 문장들을 10년이 지난 오늘 다시 꺼내 놓는 페이스북 덕분에 글감 하나 장만했다.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의 강을 건너온 시어(詩語)들은 이제 노년의 나를 향해 새로운 말을 건넨다. 그것은 찰나의 허무함이 아니라, 머무름 그 자체의 숭고함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연은 언제나 위로의 방식이 정직하다. 성에꽃은 제 몸이 녹아 사라질 운명임을 단 한 순간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온도의 정점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그려낼 뿐이다.
10년 전의 나는 그 모습에서 스러지는 것의 슬픔을 보았지만, 오늘의 나는 사라지기에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의 당당함을 배운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의 조각들이 모여 삶이라는 거대한 무늬를 이룬다는 사실을, 자연은 성에꽃이라는 짧은 생을 통해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다.
인간의 삶 또한 자연의 섭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늘 해 아래 당당히 피어 오래도록 지지 않는 꽃이 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추위 속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창가에 기대어 홀로 피어나는 성에꽃 같은 시기를 지나기도 한다. 그때 흐르는 눈물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차가운 곳에서 피워낼 수 있는 가장 뜨거운 인연의 증거다.
시의 마지막 문장처럼, 모든 것은 결국 '인연'으로 귀결된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피어나는 용기, 그리고 그 찰나의 마주침조차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것이 자연이 내게 준 최고의 응원이었다.
자연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우주의 거대한 순환 속에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성에꽃이 녹아 흐른 자리는 결코 빈자리가 아니다. 그 물방울은 다시 공기 중으로 흩어지거나 땅을 적시며 또 다른 생명을 준비하니까.
그런데, 10년 전의 기록이 어쩌면 꼭 이럴 때 도착했을까. 아버지가 영원으로 떠나셨고 남편은 회사 운영을 지탱하기 어려운 고비를 겪고 있고, 그나마 다행스럽게 뇌경색으로 입원하셨던 시어머니께서 퇴원하신 그런 지금.
어쩌면 내가 겪는 변화와 소멸의 과정 역시 더 큰 삶의 무늬를 그리기 위한 필연적인 단계라고 여기라는 응원과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이루는 대자연의 섭리가, 10년 전의 내가 보낸 '인연'이라는 단어로 도착했다. 인연이란 포근한 말이 오늘은 무척 시리다. 또, 한 편으로는 참 다행스럽다.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내 곁에 머무는 것들을 온 마음 다해 사랑하라는 의미 같아서일까?
성에꽃이 남긴 투명한 가르침처럼, 나 또한 내게 주어진 계절을 정성껏 살아보자. 자연이 건네는 이 찬란한 응원이 있다면, 어떤 추운 아침도 다시 시작할 이유가 되기에 충분할 테니까. 그래야 10년 후 또 오늘 나에게 이 다짐을 응원으로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당당하게, 그리고 다정한 토닥임으로.
잘했다 김수경. 그래서 고마워.
나의 2015년 그 나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