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을 잡아버린 벽보

2018.02.18

by 종이소리

무슨 말이었을까.

정갈했을 골목 담벼락 곳곳에

벽보가 붙었다 뜯겨 나간 흔적들이,

드문드문 글자들과 엉겨 붙어 있었다.

마치 이 길이 지나온 수많은 계절과

사연을 온몸으로 호소하듯...


​가까이 다가가

겨우 살아남은 문장들을 짚어본다.


"시간이 얼마 없다..."

"주장에 참조된 판결",

"매물 비용과 무관한..."


부서진 글자들 사이에는

누군가의 간절했던 어제가

나이테처럼 겹겹이 새겨져 있었다.

​......

​더 쾌적한 삶으로의 도약을 꿈꾸며

설레는 마음으로 이삿짐을 꾸린

희망의 꿈도 있었을 것이고.

손때 묻은 집과

정든 이웃을 뒤로해야 하는

서글픈 이별이 발길을 붙잡던

그런 정도 있었을 테다.


​사정을 다 알지 못하는 이방인의

이 조심스러운 물음표가

어떤 의미로 남을지,

오직 이 골목만 알아 달라며

나는 벽보가 붙은 담장을

시린 손으로 쓰다듬으며 토닥였다.


​더 좋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뜨거운 '희망'도,

행복했던 기억을 품고 떠나야 하는

애틋한 '마음'도,

모두가 이 골목을 지탱해 온

소중한 주인이었음을 기억할게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두의 시작과 마무리를

묵묵히 품어준 서대신동,

그 깊고 다정한 골목이여.

그리고 이 골목의 모든 주인들께서도.

어디에 계시든 평온하시기만을!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