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4
오동나무 언덕을 내려와서 이어진 길을 걷다가 길모퉁이가 보이는 왼편으로 예기치 못한 풍경 하나가 또 발길을 붙잡는다.
길모퉁이를 꺾어 들어가는 지점에 마치 요새처럼, 혹은 작은 성처럼 우뚝 솟은 건물 하나.
현대적인 아파트의 매끈한 수직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형적인 다세대 주택의 단조로움도 아니다.
그것은 세월의 층위가 겹겹이 쌓인, 어느 건축가의 고집이나 집주인의 강렬한 취향이 반영된 독특한 풍채를 지니고 있다.
이 길에 서면 무심코 지나갈 수 없는 풍경에 어느 눈빛 하나쯤은 이 자리에서 서성이는 나처럼, 남다른 집의 풍채를 감상했을지도 모르겠다.
길모퉁이에 성처럼 서있는 집의 벽면에 '윤창'이라는 명패가 붙은 것으로 보아 건물 이름이거나 건축가의 이름일 수도 있겠다.
글자 하나하나에 서린 무게감이, 집이 단순히 사고파는 '부동산'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증명하는 '기록물'임을 웅변하고 있는 것 같다.
1943년 폭격으로 파괴된 국회의사당 재건을 논의하며 던진 이 통찰은, 골목 안의 작은 집들에도 유효하게 적용된다.
사람의 손으로 벽돌을 쌓고 창을 내어 집을 만들지만, 일단 그 공간이 완성되고 나면 그 집은 다시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정서와 삶의 궤적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낮은 천장은 아늑함을 가르치고, 좁은 골목으로 난 창은, 이웃의 안부를 묻는 법을 가르친다.
윤창이라 불리는 이 성채 같은 집 역시, 수십 년간 이 자리를 지키며 그 안을 거쳐 간 이들의 성격과 가치관을 조각해 왔을 것이다.
집은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다. 서대신동의 이 굽이진 길 위에서 '윤창'은 단순한 주거 공간 이상의 기능을 수행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아침 맞이하는 든든한 일상의 시작점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올 때 멀리서부터 안도감을 주는 이정표였을 것이다.
모퉁이를 감싸 안으며 꺾여 올라가는 계단의 곡선과 햇살을 받아내는 외벽의 질감은, 그 집을 바라보며 자라난 아이들의 시각적 감수성을 형성했을 것이 분명하다. 처칠이 말한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는 철학은 이처럼 거창한 국가적 상징물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곁의 평범한 골목길에서 가장 선명하게 작동한다.
최근의 도시는, 건물이 사람을 만드는 과정을 생략하려 한다. 규격화된 아파트와 효율성만을 강조한 빌딩 숲 속에서 '장소의 정신'은 거세된다. 어디를 가나 똑같은 평면도와 똑같은 조경을 마주하며, 우리는 우리의 정서가 어떻게 마모되어 가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대신동 5 구역의 이 집은 귀중한 기록이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 골목의 흔적이 지워지기 전에, 우리는 이 건물이 그동안 이 동네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기록해야 한다. 이 집이 서 있음으로써 완성되던 골목의 균형, 그리고 그 풍경을 감상하며 자라난 사람들의 내면을 추적하는 일은 곧 우리 시대의 인문학적 작업이 된다.
길모퉁이에 성처럼 서 있는 '윤창'을 다시 한번 올려다본다. 그곳에는 한 개인의 역사와 동네의 시간이 공존하고 있다. 사람은 이 건물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이 건물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과연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빚어내고 있는지를.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는 상자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담고 삶의 궤적을 그려나갈 수 있는 진정한 '장소'를 우리는 여전히 소유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이 길 위에 서서 집의 풍채를 감상하는 이방인의 심정은, 결국 잃어버린 우리 자신의 장소성을 회복하자는 간절한 호소였다.
아래 그림에서 카메라가 표시된 곳 오른쪽에 윤창이 살고 있었다.
수고 많았습니다. 윤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