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보다 감각
막상,
《비전공이면 어때? 자격보다 재능》
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열고 보니
갑자기 막막한 심정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
이 단순한 여섯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사실적인 경험을 서술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그것도 모르고 그냥 덜컥,
시작부터 저질러버렸다는 게
참 부끄럽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참 시원하기도 하다.
글을 쓰는 전문 작가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내가
과연 이 연재를
잘 이어나갈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부끄럽고
술술 읽어 내릴 가독성과
잔잔한 울림을 전할 수 있는 글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용기 하나 믿고
연재를 열었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망했다.
어떻게 수습하지?
무엇에 홀려서
이런 사고를 쳤을까?
그런데. 괜찮아.
어쩌면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제목에 어울리는 솔직 담백한
출발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지금,
머릿속에 저울 하나를 가져다 놓고
두 가지의 설정을
저울판에 올려놓았다.
감각과 자격이라는 글자를 담고
시소를 타고 있는 두 개의 저울판을
턱 괴고 물끄러미 쳐다본다.
올랐다, 내렸다 하는 저울질을 보다가
하루를 그냥 보낼 판이다.
별수 없다.
이럴 땐 집중이라는 부적을 쓰고
다시 정리하는 수밖에.
종종 탐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비전공이란 이유로 시작을 망설이고
스스로 재능을 포기하는 분들을 보면
예술가의 길을 ‘삐딱하게’ 걸어온
나의 기록을 (부끄럽지만) 공유하며
응원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늘 이 말을 전해 주고 싶었다.
《필요한 건 학위도 자격증도 아니라,
당신의 호기심과 타고난 감각,
그리고 계속하려는 끈기입니다.》
2014년 일기장에 이런 글을 써 두었다.
"If you really love what you do,
then the rest follows."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말로 좋아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Craig R. Barrett
어디서 읽고 옮겨두었는지
출처를 남기지 않아서
인텔의 최고경영자인
크레이크의 명언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단박에
내 영혼을 울리는 말이었다.
나는 대학 학위가 없는 예술가이다
전문대 관광과를 졸업한 나는
전공도 아니었고, 자격증도 없는
섬유공예가가 되었고
설치미술을 하며 사진을 찍고
업사이클링 디자이너로,
환경생태를 주제로 한 미술가로
모든 커리어를 조합해서
지역자산을 활용한
문화기획 일도 하고 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지도교수님, 멘토님은
내게 너무 과분한 이름이다.
그래도 당당하게 걸어온
최고의 무기와 자산은,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
'만나고 싶다. 내 호기심의 끝'
그 두 가지가 전부이다.
"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에
고개를 끄덕인 내 감각,
그리고 손끝의 여정은
《진짜》를 선물해 주었다.
누군가는 ‘비전공’이라 말하며
내 길을 의심했고
또 누군가는 ‘전문가 맞아?’라며
내 무늬를 비아냥했다.
그로 인해 "늦깎이 비전공은"
여러 도전에 탈락을 선물로 받았다.
울분과 분노의 배를 타고
망망대해에 혼자 떠다니며,
그래서 통곡한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어떤 고통이었는지
내 가족도 친구들도 모르는 나의 어제.
그래도 나는 또
묵묵히 바다에 버려진
폐그물을 걷으며
바다생명을 위로하고
버려지는 자투리 섬유를
긁어모아 요람을 짰으며
종이를 감고 꼬아 엮어
종이그물을 짜기도 했다.
신념을 거스르지 않고
원칙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진심과 각오는 늘 시대의 흐름과
잘 나가는 유행의 뒷걸음질이었지만
묵묵히 믿고 따라온 나의 길.
"느려도 괜찮아.
돌아가도 괜찮아.
빨리 가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다양한 경험을 만날 테니까
그래서 더 예쁘고 찬란한
무늬로 빛날 테니까."
아무것도 없었던 내가
조금씩 무늬를 얻고,
결국 ‘진짜 잘 아는 사람’
'진짜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믿게 된 시간들.
그래서 나의 이 여정이
그 시간을 통과해 온,
비전공자의 연대기이자
감각을 믿는 이들을 위한
작은 응원이 되면 좋겠다.
“비전공이면 어때?”
그 말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문이 되면 좋겠다.
그대만의 감각과
삶의 시간이 만나 발현된
유일한 가치이자
고유한 재능이
그대만의 무늬가 되기를
그래서 진짜가 되기를.
자격증이나 학위가 없어도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유일한 가치, 고유한 능력"을
발휘하며 반짝일 그대의 재능을
자신 스스로 믿고 따르기를.
묵묵히 노력하며
자신의 꿈으로 다가가다 보면
알게 될 거예요.
《타고난 감각, 재능이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당당하게 실천하는 사람이란 것을.》
재능은,
자격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라는 이름을 빌려오지 않고도
자기만의 언어와
무늬를 만들어내는 힘이란 것을.
재능과 감각이
자격을 이기려는 게 아니라,
재능과 감각이
나를 나답게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믿고 살아내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게 될 거예요.
그 믿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날 이렇게 말하며 빛날 거예요.
“나는 지금,
나의 무늬로 살아가고 있어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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