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지도교수님이요? 쓰레기예요

새로 태어나는 방법을 알려 주셨죠

by 종이소리

그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작가라고 했다.
나는 처음 들어본,
생소한 유명인이었다.

"그 교수님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작품을 보는 순간,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듯했어요. 여기, 이 것 좀 보세요."

휴대폰을 내밀며
사진첩에 있는
'영혼이 빨리는 작품'을
보여 주는 그녀의 눈이
호들갑으로 깜빡거렸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죠? 천재예요, 천재, 어때요? 선생님? 멋지지 않아요? 전, 태어나 이런 작품은 처음 봐요! 휴..."

그녀가 내미는 휴대폰을 받아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아무 말도 없이 쓱쓱,
대충대충 넘기고는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우리나라 유명 연예인들
몇 명이 이 교수님 작품을
그렇게 많이 샀대요."

휴대폰을 돌려받으며 말하는
그녀의 큰 눈이 반짝반짝했다.

"멋지네요."


단 한마디로 일축한 나는,

허리를 의자 등에 기대며

하품을 했다.


"그렇죠? 그래서 교수님께

선생님 자랑을 했어요.

그랬더니 보고 싶으시다며

자리 한 번 만들어 달래요.

어때요? 만나 보실래요?

저는 두 분이 만나면

뭔가 대작이 나올 것 같아요"


그녀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사람됨이 믿음성 있고 듬직해서

꽤 아끼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 미더운 사람이

소개하는 분이라면

믿을 만한 지성이라고 생각했다.


"자리 한 번 만들어 보세요.

제가 그렇게 대단한 분을

만날 기회를 주셔서 고마워요"


그녀의 마음에 대한 예의로

수락은 했지만 만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었다.

사실, 누군가로부터

사람 소개받는 일이

언젠가부터 버거워졌다.

내가 비전공 예술가라는

꼬리표의 시선을 알아챈

순간부터다.


때문에 그 천재적인

교수님을 만나는 날,

'뻔뻔한 나'는 어디로 숨었는지

다소 긴장 상태였다.


'이번엔 또 무슨 질문과

싸워야 할까?'

라는 생각이 켜 둔 비상등이다.


내겐 늘,

번쩍번쩍 울리는 빛이지만

그날은 유난히 왱왱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인사부터 요란했다.

"설치미술은 언제부터 했어요?

작품이 꽤 신선하네. "


'마음을 나눌 눈빛이 먼저 아닌가?'

'온기를 나눌 악수는 예외?'

'먼저 앉으라는 예의는 제외?'


카페 현관을 들어옴과 동시에

그녀와 간단한 인사를 하더니

의자에 앉기부터 하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올렸다.


"귀한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도교수가 누구신가?
내가 아는 이름인가 싶어서.


화기애애의 시간을 기대한 건

대단한 나의 착각이었다.

단박에 '건방'으로 돌변했다.


"제 지도교수님이요?"



"쓰레기요"


대답을 못하는 건지,

할 수 없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싶었는지,

내 눈을 피하고 싶었는지.


휴대폰에 얼굴을 박은 채

비틀린 입술을 더 비틀던,

대단한 그 유명인이

시커멓게 칠을 한 얼굴로,

드디어,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테이블 위로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입을 움직이던 순간,

해사하게 웃으며

내가 말했다.

"아, 이런, 제가 거두절미하고

몸통만 자랑했네요^^"


그리고는 아이스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용광로가 된 속을 달랬다.

"저는 학위가 없어요.

요즘, 저처럼 예술하는 이들을

'비전공예술가'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지도교수님이

계실리 만무하죠."


아이스커피가 담긴 유리컵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차가운 얼음을 안고 살아야 하는

뼈아픈 고통이 흘리는

유리잔의 눈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명하고 영롱한 물방울을

세상에 단 한 번뿐인,

멋진 무늬로 탄생시키는

유리컵.


그러니까, 당당해야지.

'버려지는 삶이 아닌

새로운 가치에 대한 고민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내 의지가 예술'이라는 것을.


"그래도 굳이 지도교수님을

소개하자면 예, 쓰레기예요.

인간이 필요해서 만들어 쓰다가,

낡았다고 버리는 폐기물들.


그물이나 철사옷걸이

원단자투리박스 등등.


온갖 쓰레기들이,

저를 가르치고 조언하고,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어요.

너무 훌륭한 교수님이세요.

저의 소재들이요."


'비아냥인 거 다 아시죠?'
라는 면박은 미소로 대신했다.


"제 작품, 한 번 보시겠어요?"


"어떠세요?

너무너무 훌륭한 지도교수님이시죠?

소개해 드릴까요?"



- 매주 금요일 연재 브런치북 -

《비전공이면 어때? 자격보다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