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봄담씨!

동화가 된 2022.04.11

by 종이소리


콜로세움보다

더 근사한 봄이겠지??

따사로운 봄햇살 앞에서

당당하게 폼 잡은 면모가

골목에서 제일 멋스러운 담.

한참 그 앞에서

폼나는 담과 놀았다.


"다음에 올 땐,

동화 한 편 갖고 올 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너, 봄담이야!"


2022.04.11




담장은,

단지 경계를 나누는

구조물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의 층위를

포개어 쌓아 올린

골목의 서사시가 아닐까.


꽉 막힌

시멘트 블록 담 위에 놓인

아치형 구멍은

마치 작은 콜로세움의

흔적처럼 보이며,

그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시선,

바람의 통로,

혹은

이야기의 틈새처럼

다가왔다.




한참을 저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이방인의 시선이 생소했는지

담장이 말을 걸어왔다.


이곳은

지나가는 바람조차

가끔은 발길을 멈추는 골목.


시멘트 블록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담장은

처음엔 그저 무채색의

벽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윗부분의 아치들은

하나의 작은 구조물처럼,

마치 고대의

콜로세움을 연상케 했다.


위엄이 아닌

친근한 견고함으로,

외부와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살짝 열린

‘틈’으로 존재하는 경계.


담장은 단지

막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안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는 밖을 바라보기 위해,

또 누군가는

단지 경계의 표시를 위해

담장을 쌓는다.


골목의 담장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자신의 터를 자랑한다.


어딘가는

철조망처럼 날이 서 있고,

어딘가는

덩굴이 자유롭게 타고 오르고,

어딘가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간

자국이 남아 있다.


이 담장은,

오래된 시간과

절제된 아름다움 사이에서

균형을 택한 것일까?

아니면

주인의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어떤 의도였는지는

상관없는 나에겐

무표정해 보이지만,

빛과 그림자가 드리우는

구멍 사이사이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다정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 담장이 좋다.

말이 없지만

이야기를 품고 있고,

움직이지 않지만

지나가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벽.


골목을 만든 건

길이 아니라,

어쩌면

이 다정하고 고집스러운

담장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소박하고

입 무거운 담장이

우리 골목에 살고 있다는

따뜻한 이야기는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


내내 누리며 살면 좋겠다.

단지

‘오래된 시멘트 담’이 아닌,

햇살 아래

자신의 멋을 아는 주체로서의

‘폼 잡은 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