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9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버려질 때를 다시 한번 고민하고
어느 날엔가 그때가 도착하면
쉽게 폐기될 수 있도록
지나친 부자재는 지양해서
만들어 주세요"
이 소원이,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에서 만난
폐그물이 전하는 메시지라고 한다면,
과연 사람들은 폐그물의 의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 버려지는 폐기물들의
부탁이라는 것을 믿어 주기는 할까?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로
거짓으로 꾸민 것 같지만
나는 그들의 입장, 아니
생명이라고는 없는 무생물,
즉 세포로 이루어지지 않은 존재에도
의지가 있고 나름의 존재 가치를
선물하고 싶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 탄생되고
인간의 이기심으로 버려지는
그들의 딱한 사정을
호소하고 싶어서다.
폐그물(Ghost net)에 끼어 있는
진흙 뻘과 여러 이물질을 세척하고,
나일론실과 면실 자투리를 이용해서
손뜨개로 색을 입히고 단장해 주었다.
새활용, 업사이클링( Upcycling).
그래서 이 괴상한 작업을 할 때마다
나는, 폐기물들의 눈과 마주한다.
"결국 버려질 것에 뭐 하러
이런 정성을 들이며,
결국 무관심 속에 방치될 것에
뭐 하러, 새 부속물을 구입하며
돈을 들이는 거죠?"
그럴지도 모른다.
결국은 쓰레기장으로 갈 신세의
이 모든 폐기물들에게
정성도 투자도 사치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런 갈등이 시소를 탈 때면,
호안 미로의 말을 조용히 따라 읽으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나는 시와 그림을 구별하지 않아요"
시와 그림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말은,
1. 형식보다 ‘감각’을 우선한다. 는 뜻이다.
그림은 시각 예술,
시는 언어 예술이라고 구분하지만
미로는 그 분류 자체를
중요하게 따지지 않았다.
결국 둘 다, “마음에 닿는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보이는 것과 읽히는 것의
경계를 허물겠다는 선언이다.
2. 폐그물은 그저 그림이고,
새로운 쓰임은 시가 된다.
1) “폐그물은 그저 그림이다”
→ 있는 그대로의 상태, ‘형태’ 자체이다.
시와 그림이 하나라는 말은
폐기물 상태의 그물은 그저 그림이라면,
업사이클링된 새로운 쓰임이
대중에게 감동을 전하는
시가 되지 않을까?
바닷속에서 떠밀려온 폐그물은
파도와 햇빛, 뻘, 조류에 깎이고 흔들려
이미 하나의 조형적 이미지가 되었고
그것은 말 그대로 “그림”의 자격일 뿐.
그 자체로 "형태(visual form)"이고,
세상 앞에서 묵묵히
존재의 모습을 드러내는
‘이미지’ 상태.
2) “새로운 쓰임은 시가 된다”
→ 의미가 생기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폐그물에 닿아
폐기물의 숨을 씻겨주고,
실로 꿰고, 다시 태어나게 하면
그때부터 폐그물은
‘쓰임’과 ‘의미’를 갖게 된다.
미학적 언어로 말하면
그것은 형태를 넘어 ‘서사’를 갖는 것.
즉, 시가 되는 것과 같다.
폐그물의 흔들림,
바람에 흔들리는 주황색 매듭,
그 속에 숨어 있던 기억과 시간들이
단순한 형태를 넘어 말이 되고,
문장이 되고, 함의가 된다는 것.
그래서 코바늘로 단장한 폐그물은
‘형태’이자 ‘문장’이다.
보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가 바로
하나의 시적 언어로 전달되는 이야기다.
어쩌면 라이너 필쯔 (Reiner Pilz)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강조하며,
더 이상 가치를 떨어뜨리는
다운 사이클링을 멈추라고
외쳤던 것은 아닐까!
"빛과 바람이 지날 때마다
그들이 표현하는 몸짓과 표정,
그 동작에서 전달되는 의미가
작품 앞에 서 있는 가슴에게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부디,
그들의 가치를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존재에 가두지 말고
인간과 공존하는
값어치로 활용되길 바랍니다."
/2023.10.19. 김수경
그들은 무죄일까 유죄일까?
우리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아주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폐그물 작업 후,
업사이클링이라는 단어의 기원을
다시 펼쳐 본다.
1994년 10월,
영국의 잡지 Salvo Monthly No.23에
실린 기사에서, 디자이너 Reiner Pilz는
이런 말을 남겼다.
“We need up-cycling.
What we do now is
only down-cycling.”
(Reiner Pilz, Salvo Monthly No.23, Oct. 1994)
그는 ‘재활용’이라 부르는 것들 중
대부분이 사실상 가치를 떨어뜨리는
down-cycling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세상은 그 말을,
거의 30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폐그물을 손에 쥐는 순간
이 문장의 진실을 마주하고
최선을 다해 그의 말을 해석했다.
버려진 것은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
바다는 버렸지만,
사람의 손은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것.
물질의 감가상각이 아니라
존재의 격상(格上)을 만드는 일.
이것이 내가 하는 업사이클링이며,
업사이클링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이며,
Reiner Pilz가 1994년에 말했던
‘up-cycling’의 본질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폐그물 앞에서,
버려진 것을 보며 미래를 생각한다.
없던 새 삶을 주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무죄(無罪)’의 상태를
다시 세상 앞에 꺼내놓는 일.
업사이클링은 거창한 환경운동의
이름 아래 허세를 부리는 활동이 아니다.
그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참된 활용(眞活用)’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실천하는
아주 작은 태도, 습관에 가깝다.
버려진 것을 다시 꾸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본래 가치를 ‘정직하게’ 되살려
우리 모두의 삶에 다시 연결하는 행위.
그것이 내가 믿는
업사이클링의 본질이며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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