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31
주인을 잃은 슬픔이었을까?
존재가치를 말살당한 억울함이었을까?
계단 여기저기 널브러진
살풍경 파편들은 터가 흘린
눈물 같았다.
누추하고 열악한 늙은 마을은 시대에 어울리는 바람직한 도시미관과는
더 이상 공존을 허락받지 못하는 것일까?
주인을 잃은 슬픔이었을까. 아니면 존재 가치를 말살당한 억울함이었을까. 좁고 가파른 계단 여기저기 널브러진 살풍경한 파편들은, 이 터가 오랫동안 참아온 눈물 같았다.
누추하고 열악하다는 이유로 '늙은 마을'이라 낙인찍힌 이곳은, 이제 시대가 요구하는 매끈한 도시 미관과 더 이상 공존을 허락받지 못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던 계단은 깨어지고, 온기가 머물던 벽면은 차갑게 식어버린 터. 재개발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폐허가 된 공간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머물던 추억의 무게는 그저 '철거 대상'일뿐이냐고.
우리는 흔히 새것을 짓기 위해 낡은 것을 부수는 것을 '발전'이라 부른다. 하지만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다. 그곳에는 수십 년간 쌓인 누군가의 삶과 시간이 켜켜이 박혀 있다.
우리가 건물을 만들지만,
그 후에는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
—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
처칠의 말처럼, 서대신동의 이 낡은 계단과 골목들은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이들의 성격과 삶의 태도를 빚어냈을 것이다. 건물이 허물어지는 것은 단순히 벽돌이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빚어낸 한 시대의 '우리'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또한, 폐허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사유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폐허는
인간의 손길이 떠난 뒤,
비로소 자연과
시간의 섭리가 개입하기 시작한
가장 정직한 상태이다."
— 로즈 맥컬레이 (Rose Macaulay),
『폐허의 즐거움(Pleasure of Ruins)』 중
비록 지금은 파편들이 흩어진 비극적인 모습이지만, 렌즈에 담긴 이 풍경은 그 정직한 아픔을 기록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이 마을이 가졌던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이 계단을 매일같이 오르내리던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지금은 부디 그 어디에선가 더 안전하고 행복한 내일을 걷고 있기를.
서대신동 5 구역의 늙은 집들이 헐리고 나면, 그 자리에는 다시 높고 화려한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하지만 내가 포착한 이 '눈물 같은 파편'들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터의 역사는 완전히 소멸하지 않을 테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존을 거부당한 공간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잊지 않고 기록하는 것'.
잘 가요, 서대신동 5 구역. 당신들이 살아내었던 그 골목, 그리고 당신들의 계단은 영원히 이어지고 있음을 기억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