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고마워요, 오동나무 씨

2026.01.10

by 종이소리
2018.01.

척박한 콘크리트 틈바구니에서 기어이 가지를 뻗어 올린 오동나무의 생애는, 마치 우리네 삶이 예기치 못한 제약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의지의 곡선을 그려내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웅변하는 듯했다.


굽어지며 곧게 뻗은,

서대신동 오동나무의 공존법

"살아냈습니다. 이웃 덕분에."


내게 있어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고, 그 속에 숨겨진 수많은 삶의 서사를 읽어내는 '비밀지도'를 탐색하는 일이다.


2018년 1월의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치던 날, 나는 재개발로 인해 철거를 앞둔 부산 서대신동 5 구역의 어느 좁은 골목을 느리게 걷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곳이 재개발을 앞둔 철거지역이라는 것을. 한 마을에서 프로젝트로 준비하던 '우리 골목 사진을 찍으며 마을자산기록가 되기' 강의를 위해 잠시 머물렀던 아미동에서부터 천천히 마을 일대를 산책하던 중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 덕분에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그곳은, 사진으로 담지 않으면 후회할 정도로 놀라운 풍경의 연속이었다.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공간이 자아내는 특유의 쓸쓸함은, 역설적으로 그곳이 품고 있던 생명들의 온기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이 이름 없는 길의 역사가, 이방인의 단순한 걸음을 붙들어 매며 특별한 사유(思惟)의 시간 속에 묶어 버린 것이다.


1. 길 너머의 발견:

시멘트 블록이 안내한 비경


골목은 도심의 고갱이자 도시의 모세혈관과 같다.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삶의 내밀한 풍경들이 그 굽이굽이마다 서려 있어, 도시가 가진 진짜 영혼과 본질이 숨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대로변의 풍경이 도시의 가면이라면, 이 좁고 높은 골목이야말로 우리가 끝내 지켜내야 할 도시의 진면목일지도 모른다.


내 삶의 클리나멘이 된 시멘트블록 계단

대티로 134번 길을 향해 걷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어느 건물로 향하는 투박한 시멘트 블록 계단이었다. 계단이 필요해서 만들었다면 분명 어떤 목적이 있는 길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치밀하게 계산된 설계가 아닌, 누군가의 절실한 임시방편으로 놓인 그 계단은 내게 마치 보물섬을 향하는 비밀스러운 지름길처럼 느껴졌다.


용기 내어 그 블록을 밟고 올라선 자리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경이로운 풍경을 마주했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탄식을 토해낼 뿐이었다.


나무와 이웃이 쓴 공존의 서사


놀라움과 함께 나는 나무를 쓰다듬으며 주변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나무가 뻗어 올라간 하늘의 풍경, 그리고 뿌리를 내린 그 좁은 틈. 그러자 나무가 살아낸 생애의 궤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정성스레 심고 가꾼 관상수가 아니라, 어느 날 바람을 타고 날아온 작은 씨앗 하나가 시멘트의 미세한 균열 사이에 자리를 잡았던 것일까? 그리고 나무가 자라나는 동안 그 앞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고, 나무는 생존을 위해 벽에 닿은 가지를 부드럽게 뒤틀어 위를 향해 길을 내야만 했던 것일까?


건물의 외벽을 따라 굽어진 그 기이한 곡선은 결코 굴복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향한 지독하고도 유연한 의지의 증명이었다. 나뭇가지는 건물 옥상을 넘어 비로소 자유로운 하늘을 만났고, 마침내 그곳에서 당당한 풍경의 주인이 되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이 나무를 대하는 이웃들의 태도였다. 자신의 벽을 침범하고 지붕 위로 가지를 뻗은 나무를 그 누구도 베어내거나 꺾지 않았다. 나무가 그리는 곡선을 따라 집의 역사가 함께 흘렀고, 사람들은 나무의 그늘을 자신의 삶 안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는 도시가 잃어버린 가장 고결한 가치, 즉 '정(情)'이 깃든 공존의 풍경이었다.

내 나름의 이런 해석이 부디 틀리지 않기를 바라며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며 가슴을 살짝 눌렀다.


분명 이웃집 창가에 마주 선 나무와 누군가는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었을 테고, 또 누군가는 나무가 들려주는 은밀한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는 심장이 벅차올라 달래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내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나무 허리에 가만히 손을 대어 보았다. 마치 엄숙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모양새였지만, 나무와 이웃의 사연을 온전히 이해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나무를 꼭 안아주고 싶어서였다. 그때, 나무가 내게 건네는 인사가 마음 깊은 곳에 선명히 새겨졌다.


"드디어 왔군요. 누군가는 와 줄 거라 믿고 기다렸어요. 나를 이해해 준 우리 골목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들어줄 것 같았거든요."


도시를 기록하는 재미로 수많은 길을 걸어왔지만, 대티로 134번 길의 이 오동나무처럼 강렬한 생의 문장을 읽어본 적은 드물다.


이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골목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과도 같았다.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는 그의 산문집 《겨울 아침》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무들은 말한다.
'기다려라,
견뎌라,
빛을 찾아라.'
라고."



존재적 가치: 골목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는 도시를 인간만의 전유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대신동 골목에서 만난 이 오동나무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남겼다. "이 길의 주인이 과연 사람뿐인가"라고.


길이 아닌 곳에 뿌리를 내리고 숨어 살면서도, 자신만의 풍경을 완성해 낸 나무 역시 이 골목의 엄연한 주인이다. 철거를 앞둔 낡은 건물의 색 바랜 벽과 오동나무의 거친 껍질은 서로를 닮아가며 하나의 예술작품을 이루고 있었다.


무생물인 시멘트와 생명체인 나무가 이토록 아름답게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효율과 개발만을 쫓는 현대 도시 계획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낸 소중한 가치를 나직이 일깨워 주는 하나의 고결한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2026년 1월 17일.


재개발이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서대신동 5 구역의 풍경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골목 끝에서 보았던 오동나무의 그 당당한 기개는 제 기억 속에 영원히 박제되었습니다.


나무는 말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형편이 어렵다고 해서 생의 그림을 그리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오히려 그 제약 속에서 탄생하는 곡선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문양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누군가의 가슴에도 이 나무의 삶이 깊이 각인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그 터전은 사라질지언정, 굽어지면서도 끝내 하늘을 향했던 그 숭고한 의지는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또 다른 오동나무로 자라날 것입니다.


골목의 마지막 파수꾼이었던 오동나무 씨, 당신이 보여준 그 찬란한 풍경을 우리는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나노바나나에게 겨울가지 사진을 보여주며, 푸른 잎이 무성한 여름날의 풍경과 풍요로운 꽃잔치가 열린 찬란한 순간을 그려달라 주문을 걸어 보았어요. 그리고 나노바나나는 내게 이토록 아름다운 사진을 선물로 건네주었습니다.

비록 내가 직접 눈으로 마주하지는 못했던 생소한 풍경일지라도, 그 골목의 오동나무는 매년 이토록 눈부신 모습으로 살아냈을 것이라 믿으며 마음 깊이 보듬고 살겠습니다.


그 앙상했던 겨울가지 너머에 숨겨져 있던 보랏빛 향기는 내내 제 마음에 만 개 중이라는 고백과 함께요.


고마웠어요, 서대신동 명진빌라 뒷마당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준 우리의 오동나무 씨. 그리고 나무의 굽은 가지가 제집 벽에 닿아도 그저 다정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명진빌라 이웃들께도 이 고마운 인사가 바람을 타고 꼭 닿기를 바랍니다.


당신들이 머물렀던 그 골목은 사라져도, 당신들이 나누었던 공존의 온기는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으로 피어날 테니까요."


"그런데 오동나무 씨,
혹시 서대신동 어딘가에서
당신의 고귀한 씨앗들이
이미 새로운 꽃을 피우고
가지를 뻗고 있지는 않을까요?
부디 꼭 그러길 바랍니다.

만일 그렇다면
어느 날엔가 그 길을 다시 걷는 제게
오동나무꽃 향기 듬뿍 날려 보내주세요.
제가 그 길 위에 서 있겠습니다.
우리 그때 꼭 다시 만나요.
그날처럼 말이에요.
고마와요, 명진빌로 뒷마다에 살았던 오동나무씨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