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서대신동 그 풍경
"잘 가요, 서대신동 5 구역."
이 책은 부동산 재개발을 반대하며
얄궂은 폄하를 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한 생애를 마감한 인간의
숙연한 장례식과 같이
이웃들의 행복과 슬픔,
그야말로 희로애락을 함께 한
집터와 골목의 마지막을
애도하는 문화를 만들어 보자는 의미로
1년 동안 준비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저 마을의 주민이라면.
이웃들과 함께 십시일반 푼돈 거두어
멋들어진 잔치를 벌이고 싶었다.
서대신동 전통문화의 자랑,
고분도리 걸립농악패의 멋들어진
꽹과리로 시작해서 '구덕망깨터 다지기' 신명 나게 한 판 놀며
골목굿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터무니없는 망상이라 할지라도
한 시대를 살아 낸 마을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며
애도하는 문화로 정착되는
하나의 예를 만들어 보자는
책임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슬픔은 슬픔대로
충분히 애도하며
새로 맞는 길과 집들을
기꺼이 환영하며
안전과 행복을 기원하는
새 문화의 역사가 되지 않을까?
누군가 이런 내 고민에
가차 없이 찬 물을 끼얹었다.
" 꿈 깨. 동화는 그만 쓰고."
아프고 속이 상했다.
그래서 더 이를 악 물고 쓴다.
재개발이 필요한 환경이라면
후세에게 들려줄 이야기라도
남겨 주자고.
" 옛 길과 집터의 환경이 화재와 안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새 집과 마을을 가꾸게 되었는데
허물게 된 집과 길에서
함께 살아 내었던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고마움의 절을 올렸단다.
그리고 오랜만에 옛 이웃들도
함께 모여 오랜 정도 나누었지.
그리고 다음 날엔
망깨터 다지기 놀이로
새 터를 위한 기원의 잔치도
함께 하며 한 마음으로 빌었지.
고운 삶이 어우러진
우리 마을 되게 해 달라고."
이런 뭉클한 사연 하나 없는
'고층아파트 단지'라도
그 주민들 중 누군가는
함께 하겠다며 손 들어줄
심장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저 아름다운 풍경이
지도에서, 약도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곧 고층 아파트의
화려하고 찬란한 불빛으로
장식될 것이다.
뒷마을 산자락 허술한 집과 길을
가려 줄 거대한 시멘트 병풍으로.
"구덕망깨터 다지기"
큰 건물이나 집을 지을 때 망께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담장이나 기둥을 세울 곳의 땅을 다지던 작업(망께질)과 그 과정에서 소리꾼이 부르는 노동요(망께 소리)가 포함된 전통민속이다./출처 문화재청
"잘 가요, 서대신동 5 구역."
수고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저 산만디 이웃들의
빠르고 살가운 지름길들.
#1쪽 #산만디_지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