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가을

2021.11.03

by 종이소리
2021.할머니노점의 치자

병원에서 나와

무심코 걸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

곧 도착한다는 정류장

안내방송을 듣고서도

그냥 걸었다.


코 앞까지 와서 희롱하는

가을 때문이었다.


치자를 말리시는 중인지,

공영주차장 울타리를 등진

할머니 행상이

곱디고운 빛으로 물든 오후.


"요 치자를 물에 담그면

이런 물감이 된단다?!

어때? 참 이쁘지?"


천둥벌거숭이 무지렁이

당신 둘째 며느리에게,

어머니는 딸에게 알려주시듯

다정한 목소리로 신이 났었다.


시집온 새내기 며느리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잘 알고 있는 이름도 일도

어머니의 목소리로 들으면,

난생처음 알게 되는 신세계였다.


"딸이 없어.. 아들만 셋 낳아

목메달 신세가 됐지. 그래서

네가 딸 같이 좋아"


그렇게 말씀하시던

어머니 두 볼에도

치자빛이 오련히 물들고 있었다.


29년 전 기억에 붙들려

치자랑 노닥거리는데

지나가던 이파리들이

후다닥 끼어들었다.


저도 가을이라고.

덕분에 짭조름한 물이

눈에서 나오다 말고

제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게

가을은 조심해야 한다니까.

마음을 홀라당 벗겨 버리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