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6
"귀한 시간을 뺏어 면목없구나.
이리 고생시켜 어쩌냐."
그러시면 지금부터 며느리 말,
잘 듣습니다! 빨리 뼈 붙게,
꼼짝 안 하시면 됩니다!"
"그건 내 잘할 수 있다!
골반뼈가 부러졌는데 으찌 꼼짝하냐? 걱정 말거라. 내 그 말은,
정말 잘 들을 터이니.
그나저나 잠을 여기서 자게 해서..
집안 일도 많을 텐데.."
"걱정 마세요. 제가 가출 전문이잖아요."
지난 토요일 밤.
골반뼈가 부러져 느닷없이
입원하신 시어머니와
오늘로써 닷새 째 동거 중이다.
사실 내겐 그 어느 때보다
하루하루 귀한 시간이었다.
내일 27일까지 코로나19
○○미술 프로젝트 기획안을
제출해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앞두고
11월 한 달 내내 발품을 팔았던 일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필 이 때냐고...
야속하고 화가 나서
발을 동동거릴 일이다.
그런데 그런 불효의 원망이
나이가 무릎을 꿇리며 다독인다.
프로젝트나 전시회는
또 다음 기회를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미래가 있겠지만
어머니께 필요한 존재가 되는
기회의 미래는 잔고가 바닥이다.
어쩌겠어.. 이번 생은 이렇게
어머니랑 살다 가는 생이 되지 뭐.
내게는 과분한 프로젝트겠거니.
내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작업량, 힘든 사람 관리 하지 말라고
신께서 미리 손을 써,
지혜의 시간을 점지해 주신 거라고.
그리 여기면 포기도 빠르고
마음도 편할 거야.
어머니께 불효한 시간을,
속죄하고 만회할 시간을
주시는 거야.
간병 중에 무료한 시간도 아껴
소중한 분들께 작은 인사라도
드리라는 따끔한 귀띔일 거야.
한 코 한 코 고마운 마음.
한 단 한 단 송구한 마음으로
넥워머를 짰다.
올 겨울은
보들보들한 어머니 살결 같은
포근한 뜨개질로 누려야지.
이런 나이도 꽤 괜찮을 거야.
제 할머니, 할아버지 챙기는
제 엄마를 보는 딸들과
함께 이 나이를 누린다는 거.
손목은 아프고 손가락은 저리지만
어머니가 좋아하실 넥워머랑
털실 손가방도 이 나이에 함께
나와 놀아주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알면 돼.
이 또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귀한 나일 테니까.
"얘, 난 저거, 회색 가방으로 줘!
흰색이 예쁘지만.. 때 타면 성가셔.."
그렇게 나의 2022년은
어머니와 옥신각신하며
나이를 짰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쉰여섯이란 무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