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보다 무모, 가치보다 염치

2015.11.13

by 종이소리
2015년 창신동 한다리중계소 연다기획 특강에서

쓸모보다 무모, 가치보다 염치.

이 한 문장을 마음에 걸어두고
다시 생각했다.

업사이클링이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수많은 상품들,


그리고 그 뒤에서

조용히 늘어나는
자원 사용에 대해.

무엇이 진짜 지속 가능성인지
다시 묻고 싶어졌다.

1. 쓸모가 만든 그림자,
선함 뒤의 모순

우리는 업사이클링이라는 단어에 일종의 도덕성을 부여해 왔다.
버려진 것이 다시 태어나고,
쓰레기가 줄고, 환경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그러나 업사이클링의 내부를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안다.

‘좋은 의도’만으로
선한 결과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업사이클링 상품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공구를 생산하고,
전기와 물을 사용하고,
비닐 포장재와 택배 박스를
다시 소비한다.

결국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실천이
또 다른 쓰레기를 낳는 구조로

반복되는 것이다.

여러 비판적 시각도

이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업사이클 제품은 수작업 기반으로 단가가 높고, 생산 과정에서 에너지 사용이 발생한다.”
/출처: corbis.tistory.com 「업사이클링의 한계와 비판」

“현 시장 구조에서 업사이클링
공급망은 기존 제조 방식 대비
경제적 경쟁력이 낮다.”
/출처: Reverse Supply Chain Network Design of a Polyurethane Waste Upcycling System, arXiv(2025)

“순환경제는 소비 패턴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출처: Wikipedia, Circular economy

즉, 업사이클링은
‘도덕적 생산’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또 하나의
소비 시나리오로 기능할
위험을 품고 있다는 의미다.

2. 2015년, 증명
[ 자투리 직조 프로젝트]

2015년,

창신동 한다리중계소라는
청년 동아리의 "연다기획"으로,
창신동 봉재공방에서
재단 후 버려지는 자투리 원단으로
직조 업사이클링을 진행했다.


버려진 천 조각들.

규격도, 색도,
질감도 제각각인 파편들.

그러나 그 불규칙함을
그대로 직조의 리듬으로

엮어냈다.

전기를 쓰지 않고,
물을 낭비하지 않고,
부자재를 새로 사들이지 않는
비전력 작업.

면, 폴리에스테르 등
내 작업실에서 나온
자투리실만으로도
하나의 직물이
충분히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직조와 손뜨개가
업사이클링에 가장 적합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리며

진정한 지속가능에 대해

설명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의 생애를
늘려주는 기술,

새로운 소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방식,
즉 ‘만들어내기’가 아니라
‘되살리는’ 시스템이라고.




이 프로젝트 이후,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초대 특강을 진행하며
업사이클링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의 경험이 오래도록
나를 붙잡고 있었고,
지금 내가 업사이클링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도
과거의 내 작업을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때의 질문에
이제야 정면으로
답하려는 것이다.

3. 그래서 나는 판매 대신
‘기술 공유’를 선택했다

나는 업사이클링 작품을
상품처럼 판매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판매는 결국
또 하나의 소비 구조를 만든다.
소비는 포장을 요구하고,
배송을 요구하고,
결국 쓰레기와 자원 낭비를
다시 촉발한다.

그래서,

전기 없이, 새로운 부자재 없이,
지금 있는 재료로 실천할 수 있는 업사이클링 팁 공유 프로그램을
구축 중이다.

그리고 누군가
작품을 구매하고 싶다기에
나는 단 하나의 조건을

제시했다.

“비닐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받아들이신다면

택배 발송을 고려하겠습니다.”

지속가능성을

말하는 제품이라면
배송의 철학도

그 진심을 따라야 한다.

4. 필츠가 말한 업사이클링은
‘상품 생산’이 아니다.

그가 말한 업사이클링은
오늘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것과는 방향이 다르다.

필츠가 말한 업사이클링은
건축 자재 재사용,
해체된 구조물의 재가치화,
대규모 환경에서의
가치 재생성이었다.

그가 지금의 업사이클링 시장,
각종 소품, 감성 굿즈,
새 플라스틱 DIY 키트
등을 본다면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내가 말한 업사이클링이 아니다.”

그의 철학은 ‘가치를 높이는
구조적 재창조’였지,
‘새로운 소비를 자극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5. 쓸모보다 무모를,
가치보다 염치를

그래서 업사이클링을 우리는,
다시 정의해야 한다.


업사이클링은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고, 염치이며,

책임이라고..

쓸모를 증명하는 대신,
무모해 보일지라도
덜 만드는 선택.

가치를 부풀리기보다,
염치를 지키기 위해
소비를 멈추는 선택.

이 무모해 보이는 길이야말로
미래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길일지 모른다.

이제는 많은 상품 대신
불필요한 부자재 없이,
아니 최소한의 부자재로
최소한의 전력 소모로
가정이나 학교, 기관, 회사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활용법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업사이클링이란 이름 아래
또 다른 소비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생을 조금 더 이어 주기 위해.

"쓸모보다 무모, 가치보다 염치"
이 말이 업사이클링을
다시 정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