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지 Apr 03. 2019

일요일 오후 6:32. 붙여넣기.

F와 아카이빙.

여름, 최근 전시도 하고 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못 보던 사람들을 몇 만났다. 미뤄 둔 서로의 얘길 나누고 식사를 하면서 그 사람들이 내게 묻는 공통된 질문이 있었는데 그건


수지, 이제 아픈 건 좀 괜찮아?


라는 말이었다.

아, 나는 그 물음을 듣고 나서야 '내가 많이 아팠었지.' 하는 사실을 자각했다. 맞다 그랬지. 하고 이젠 생각도 안나는, 고작 몇개월 전인데도 까마득한 예전처럼 느껴지는 겨울.

나는 종종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답해야할지 당혹스러웠다.
사실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도 잘 안 나고. 그 사이에 다른 많은 일이 있었던 데다가, 내겐 너무 힘든 기억이라 아픔에 그냥 지워버린 것 같기도 했다. 많은 것들이 흐릿해진 까닭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 그저 ‘그렇지 뭐. 이젠 괜찮아.’ 하고 화제를 돌렸다.




1월의 나는, 걱정하는 지인들에게 되려 웃으며

"나 쓰러질 뻔 했잖아.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고. 근데 의사 선생님이 술도 마시지 말래. 그게 말이 되냐."

농담처럼 실없는 소리를 내뱉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코 농담은 아니었다. 사실은 반대에 아주 가까웠다. 매일 약에 취해 몽롱하게 잠들었다 깨어나는 게 일상의 전부인 사람. 그때의 나는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파 그것 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이렇게 아프기도 하는구나. 힘든 일은 많았어도 몸으로 나타난 적은 없었는데. 늘 멘탈 건강하게 잘 이겨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몸이 버텨내지 못해서 마음과 생각이 무너지기도 하는구나 라는 걸 시시때때로 느꼈던 사람.
아니 사실은 마음이 먼저인지도 모른다. 몸이 버티다 튕겨져 나간 건지도 모른다고.




별 거 아니라 생각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한데, 확신이 없으니 무서웠던 것 같다. 약을 먹으면 나아지긴 하는 걸까. 언제 또 쓰러질지 모르는데.
사전 증상도 예고도 없이, 이유도 모르게 증상이 나타나니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신경안정제에 취해 일주일 내내 침대에서 잠만 자고, 약 기운이 사라지면 끼니를 때우고 다시 약을 먹고 그게 반복됐다.


2주 쯤 지나서, 이러다간 내내 죽은 듯 누워만 있겠다 싶어 약을 끊었다. 다행히 그 뒤로 증상이 나타난 적이 없어 남은 약은 전부 넣어두었다. 6개월이 지났고, 내내 이상이 없었으니 지금은 괜찮은 거겠지 여긴다.

지금은 정말 아프지 않다. 많은 것들에 신경 끄고 나에게만 집중하고, 배우고 운동하는 삶을 (어쩌다보니) 지속해가고 있는데, 심리적으로도 훨씬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이젠 내가 아팠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물렁해도 조금씩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애초에 완치라는게 없대서 또 증상이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꽤 오랫동안은 없을 것 같다 생각한다. 종종 흔들리긴 해도 지금의 나는 나를 보듬고 살필 줄 알고, 건강한 사람인 것 같아서. 그거면 충분한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은 걱정하고 염려해 준 많은 친구들에게 애정을 담아 보내는 몇 문장의 편지. 나도 잊어버린 내 아픔과 마음을 오래 기억해두고 품어주어서 고맙다는 글입니다.

더운 날 모두 몸 조심해요.

2018년 여름의 한 구석에서. 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