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파리는 많은 영화나 책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곳으로 그려지며 낭만의 도시라는 포지션을 지켜왔다. 이 도시의 면면이 지나치게 좋게 포장되어 있어서 실제 모습을 마주한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기도 하는데, '낭만의 도시'라는 그 닉네임만큼은 거의 유일하게 그 명성에 걸맞게 자리한 듯하다. 비 내린 파리의 거리는 수채화같이 옅으면서 우아하고 밤의 어둠을 입으면 고흐의 유화처럼 깊고 고혹적이다. 강을 낀 다리들도, 오래된 건물의 돌담도, 소담스러운 색색의 정원들도 시시각각 변해가는 빛과 그림자의 운치를 입고 근사해진다. 이렇다 보니 빵집 앞 벤치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옆 사람에게 문득 저 죄송한데 저의 운명의 그분이신가요? 하게 되는 것이다.
⠀
표면적으로 이 도시의 매력은 나라 자체의 고도화된 미적 수준, 체계적인 건축 설계 및 깐깐하게 보전된 건축물 등의 물리적 이유로 설명 가능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더욱 다면적인 이유는 파리라는 도시를 살아가고 또한 사랑을 꿈꾸며 도시를 스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의 합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다 보니 도시의 버프를 받아서 없던 연인들도 생길 지경인데, 사랑이 진행 중인 연인들에게 이 도시의 낭만은 얼마나 꿀 같을까. 정말이지 세느 강가에 앉아 물고 빨고 하는 커플을 한 둘 본 게 아니고 그 수위가 보통 높은 것도 아니어서 관람료를 내야 되나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 꼴이 정말 보기 싫어서 한 번은 한국말로 야 방을 잡아라 방을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열차게 이 거리를 쏘다닐 무렵 나는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에게 차인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정성 들여 시를 읽고 " 라벨 온딘은 역시 펄라 뮤터지! " 라는 말을 하는 단정하고, 지적이고, 신사적인 사람이었다. 헤어짐을 고할 때 그는 나같이 구질구질한 사람이 젓가락 하나 꽂을 틈도 없이 단호했다.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나 지금은 알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어서 식빵 구우면서도 울고, 커피 내리면서 울고, 쇼팽 발라드 연습하면서는 더더욱 많이 울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쇼팽 발라드 4번을 치지도 듣지도 못한다.
⠀
세상의 많고 많은 곳들 중에 어쩌다가 하필 이 시점에, 이 보들보들한 곳에 뚝하고 떨어졌담. 운이 없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내 존재가 빗방울처럼 홀로라는 게 길모퉁이만 돌아도, 집 문을 열다가도, 아이스크림 가게를 들어설 때마다 매번 되새김이 되는 상황이라니. 그때의 나는 늘 울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고 있었으나 동시에 늘 울고 싶었다. 글쎄, 힘들었다는 말은 너무 평면적인 것 같다. 그것은 아주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슬픔이었다. 그렇다고 내 슬픔이 특별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 누구라도 겪는 그런 종류의 일이니 결과를 받아들이되 지나치게 비관적이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별의 보편성이나 타이밍의 사소한 불운을 이해한다고 그 고통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여느 사람들도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종류의 동질감과 안도가 들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