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곡식을 빻는 곳은 늘 성적 함의를 가진다. 동양에서는 물레방앗간이, 서양에서는 풍차가 대표적 예인데 자연의 힘을 사용하기에 무한 동력에 가깝고, 곡류 가공 시 발생하는 소음이 그 안에서 생길 법한 다른 소음들을 가려주기 때문일 거라 추측할 수 있겠다. 또한 맷돌이나 방아가 움직이는 모양새가 다른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고 하는데 저는 미혼이라 잘 모르겠으니 전문가들은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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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영적 정화를 끝낸 후 몽마르트르 언덕을 따라 쭉 내려오면 클리쉬 가의 물랑 루주에 도착하게 된다. 불어로 물랑 Moulin은 풍차(Mill), 루주 Rouge는 빨강(Red), 직역하자면 ‘빨간 풍차’인 이곳은 이름에 걸맞게 지난 백여 년 간 파리의 유흥을 선두해온 역사적 카바레 및 주점이다. 외설적 춤 '캉캉'의 탄생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보수적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경찰은 외설적 행위나 그것을 자극하는 의상들을 점검하고 다녔다. 유흥주점도 예외는 아니어서 업소녀들은 단속을 피해 긴치마를 입기 시작하였는데 크로와상처럼 속을 층층이 쌓아 풍성하게 만든 긴치마가 바로 캉캉 치마. 경찰 단속을 피하기엔 안성맞춤 의상인 셈이다. 하지만 단속이 끝나면 업소녀들은 치마 속에 스타킹이나 가터벨트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다리를 찢는 춤을 선보이곤 했다. 창조의 어머니는 모방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 창조의 어머니는 목구멍이 포도청일 때인 것 같다. 역시 보일 듯 말 듯 해야 애가 타고 적당히 가려줘야 훨씬 더 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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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랑 루주 양 옆으로 성인용품 매장과 성인 쇼 비즈니스 상점들이 쫙 들어서 있다. 하지만 여성의 성적 쾌락 추구가 절대 금기처럼 여겨지던 사회에서 자란 전형적 한국 여성인 나는 나이를 꽤 먹고도 성인용품 가게에 가 본 적이 없었다. 한국 문화 자체가 그런 것들에 노출될 기회를 아예 제공하지 않기 때문일 텐데 비단 나뿐만은 아닐 테고 한국 남자라고 별 다를까 싶다. 끽해봐야 시청각이나 했겠지 뭐.. 이런 걸 보면 우리는 단체로 상등신 집단인 것 같다 ㅋㅋ 굳이 그런 거 없이도 다 된다는 남성분들 혹 계실 것 같은데 예 행복 회로 맘껏 돌리십시오, 착각은 공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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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 지진아의 상태를 벗어나고자 늘 스치기만 했던 성인용품 가게에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별 것 아닌 일이어도 내 딴엔 큰 용기를 낸 셈인데 막상 입구에 도착하니 어쩐지 우물쭈물하게 되더라. 그래도 여긴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뿐이다 생각하니 맘이 좀 놓였다. 내가 선택한 가게는 층별로 테마가 나누어져 있어서 전문가들이 투어 및 설명을 해주는, 이를테면 건물 전체가 거대한 '기쁨의 섬' 같은 곳. 이 큰 건물 통째가 관련 제품들로 들어찼다니, 도대체 난 여태 난 뭘 하고 산 걸까 자괴감이 들었다.
배움을 갈구하는 낮은 자세로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하지만.. 하 정말 입구에서 딱 다섯 발자국 들어간 순간부터 이미 시간과 공간의 방을 떠도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어떠한 상상력을 발휘해도 기능을 전혀 알 수 없는 것들과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것들이 눈앞에 마구마구 펼쳐지더라 ㅋㅋ 추측이라도 할 수 있는 것들 두 어개를 지나니 당최 물체인지 옷인지 기구인지 악기인지 상태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수두룩 깔려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계(?)에 한정한 게 아닌 건가 싶기도 함.. 눈이 번쩍 떠졌다 감겼다 또 떠졌다 감겼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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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즐거워지고 싶어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개발해 내고 있다. 이것들이 더 많은 개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서 넓은 의미로 결국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거 아닌가? 노벨 평화상이라도 줘야 되는 거 아닌가? 등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순간 생각지도 못한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우와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욕먹고 쫓겨났다 헤헤... ㅋㅋㅋ
그래도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배운 것이 몇 개 있음. 그중 하나는 거기서 파는 양초는 분위기 잡을 때 키라고 쓰는 게 아니었다는 것. 이건 머리끈인가요?? 했던 것은 사실 한 벌 의상이었는데, 아니 선생님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랩니까?? 상하의 구별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가능하대도 의미 없는 것들 ㅋㅋ 지금 당장 평화시장에서 노끈 20미터 떼다가 한 치씩 끊어다 팔면 그날로 나도 의상 디자이너 데뷔네요, 이런 걸 사가는 사람도 있어요? 여쭤봤더니 그게 베스트셀러라더라. 역시 프랑스는 패션 선진국이다 싶었다. 그리고 작년 초에 이태원에 놀러 갔다가 그 크기의 딱 1/30만 한 성인용품 샵을 지나쳤는데 후후 이런 건 이제 껌이지 나 이제 그 안에 있는 거 전부 다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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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성적 유희는 지극히 개인의 영역이고 나만 해도 누군가 "수진 씨는~ 밤에 어떤 취향이신지..?" 라며 은근하게 물어오면 “ 아니 왜 사람 밥을 먹고 개소리를 함^^?"라고 맞받아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알 거 다 알고 할거 다 했으면서 공개적으로는 성모 마리아 포지션에 빙의하여 섹스의 ㅅ이라도 마주할라 치면 팔다리 잘려 나가는 것 마냥 소스라치는 애들이 있는데, 진짜 너 그거 병이에요. 잘 모르시나 본데 미안하지만 그 결과로 태어난 게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