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에게 이별을 말하고 곧 다른 여자와 연애하다 결혼했다. 그가 헤어짐을 고했을 때에 나는 이제 겨우 이별을 시작했으므로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귀국하고 얼마 안 되어서, 구체적으로 2019년 2월쯤에 예술의 전당 앞을 회색 롱 패딩 입고 발로 푹푹 차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문득 아 드디어 오늘 이별이 완성되는 날이구나 하게 되더라. 우리의 연애로 시작해 나의 이별로 끝난 그 이야기는 그 지점에서 온점을 찍은 것 같다. 교통사고처럼 어디서 언제 일어날줄 모르는 게 사랑이라면 이별도 비슷한 느낌으로 완성되나 보다. 그 과정이 힘들었다고 그와의 연애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었고 우리는 반듯하게 만나다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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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데자르 (Pont des arts)는 말 그대로 '예술의 다리’라는 뜻으로 센 강 보행자 전용 교각인데 관광객들에게는 ‘사랑의 자물쇠’를 걸어 잠그는 다리로 더 유명하다. 연인들이 와서 자물쇠에 이름을 쓴 후 영원을 약속하며 다리에 건 후 열쇠를 강으로 던져 버리며 그 맹세는 완성이 된다. 이후 이 다리가 유명세를 타며 너무 많은 자물쇠가 달리는 바람에 주기적으로 열쇠를 철거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결국은 그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난간이 붕괴되기도 하자 이제는 아예 열쇠를 달지 못하게 다리 전면을 강화유리로 교체해 버렸다. 절대 자물쇠를 걸지 말라는 푯말도 있고 그 ‘열쇠 달지 않기 운동’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진행 중인 모양인데 사진에서 보다시피 어딜 가나 하지 말라는 짓 꼭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 뭔가를 걸 틈이 있는 구석구석엔 아직도 빼곡하게 자물쇠가 걸려있다. 우리 사랑을 강 화유 릴 따위로 막을 수 없어!라는 마음으로 달아놓은 모양인데 자물쇠로 걸어 잠거야만 안심할 수 있는 사랑이라면 이미 옅어지고도 남았겠지. 지금쯤 그 사랑의 맹세를 한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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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는 영화가 있다. 이영애는 지가 라면 먹자고 꼬셨으면서 유지태가 김치 담가준댔는데도 딴 남자랑 바람피우다 헤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래서 헤어졌구나 싶다. 이영애는 라면을 원했는데 유지태는 김치를 원해서. 최근에 다시 이 영화를 보다 영화 제목이 봄날은 갔다가 아니가 봄날은 간다 인 것이 중요한 포인트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막연한 낙관주의자는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염세주의자 일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그러거나 말거나 봄은 다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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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기에 가게 되면 나도 자물쇠를 하나 걸어야겠다. 촌스럽대도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떤 대상을 두고 사랑을 언약하는 행위는 아닐 거고 봄은 갔지만 봄은 돌아온다는 사실, 그리고 저 문장에서 봄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치환한 그 뻔한 사실의 증명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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