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콘서바토리 CNSMDP 근처의 악보 가게에 가면 콘서바토리 재학생에겐 20% DC를 해준다. 계산하는 점원이 student?라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oui 해버렸다. 사실 말을 못 알아들어서도 있지만 알아들은 이후에도 계속 그렇게 대답했다. 내가 아무리 동안이래도 10대 후반처럼 절대 보이지 않을 거고 게다가 난 동안도 아니라 거의 학부모처럼 보이는 상황인데도 그 여자 점원은 나의 그 뻔한 거짓말을 늘 눈감아줬다. 하지만 파리의 나는 초콜릿과 마카롱을 지나치게 많이 사 먹어서 늘 돈이 없었고 한국에선 10만 원이지만 프랑스에선 3만 원이면 사는 악보를 안 살수는 (도저히) 없었다. 질 좋은 악보를 사 오려고 캐리어 하나를 텅텅 비워간 내가 아닌가. 숙제하듯 매일 장 조레스 가를 뻔질나게 돌아다니면서 악보 사냥을 했다. 전리품을 백팩에 넣고 무겁게 숙소로 돌아올 때면 매번 너무나도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뭐하러 솔직해지려고 했는지 (아마 그 근처에 몽마르트 사크레쾨르 대성당에 갔다 와서였을지도) 하루는 여태 악보 사모은 영수증을 들고 가선 나는 사실 여기 학생이 아니고 내가 불어도 못하고 해서(그 와중에 비겁한 핑계) 네가 이때까지 할인을 해줬는데도 가만있었다고 고백해버렸다. 그랬더니 깔깔 웃으면서 네가 학생이어서가 아니고 행복해하면서 악보를 많이 사가서 You look so happy and you buy a lot 디스카운트를 해준 거라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디스카운트를 더 해줬고 선생님이랑 같이 갔을 땐 더더 많이 디스카운트를 해줬다. 연필도 한 자루 주셨다. 나는 염치없이 그 호의를 거절 한번 없이 다 받았고 악보 살 돈을 아껴서 초콜릿을 더 많이 사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