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피아니스트의 우당탕탕 미국 유학 에피소드

- 중국 쌍둥이 학생 가르치기 편

by subitopiano




브런치에 올릴 글 사냥을 하러 페이스북 유물함을 뒤지다가 비공개로 되어있던 2017년 8월 19일 자 일기를 발굴해 옴.









올해 들어 중국에서 온 아홉 살짜리 쌍둥이 남자 애 둘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중 형 찰스의 인생 최대 난관을 같이 헤쳐나가는 중이다. 저번 학기 스튜디오 리사이틀에서 다른 학생이 치는 파헬벨 캐논을 듣곤 뭐에 꽂혔는지 그 이후로 계속 캐논을 치게 해달라고 한 달을 조른 아이였다. 찰스야, 너 이제 도레 도레 하는 중인데 어떻게 캐논을 치니? 하지만 막무가내인 아홉살짜리 남자애를 무슨 수로 말릴 수가 있을까.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어서 쉬운 버전의 캐논을 겨우 찾아 요리조리 음을 깎아낸 다음에 같이 연습 중인데, 그 갸륵한 정성에 부처님이 응답하셨는지 3개월째 되니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캐논 같은 캐논이 완성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어제는 내 개인 연습을 끝내고 주차장으로 나오다 음대 복도에서 우연찮게 찰스를 마주쳤다. 그런데 세상에 애가 얼마나 울었는지 이마며 얼굴이며 땀범벅이 돼서는 나를 보자마자 선생님 하면서 무르팍에 안기며 엉엉 우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애를 안아 들고 왜 그러냐 했더니 피아노 악보를 펼치면서 이 부분이 어려워서 잘 안되는데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한다. 옆에 계신 엄마는 이미 넋이 나간 상태. 얘기를 들어보니 집에서 연습을 시작했는데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는 엄마는 도와줄 수가 없고 내일 레슨 시간에 선생님께 도와달라 하자했더니 애가 얼른 선생님한테로 가자고 네 시간 동안이나 울고 불고 난리를 쳐서 어쩔 수 없이 학교 연습실로 데려왔다고. 연습 끝내고 나가던 나를 복도 끝에서 마주쳤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Indiana University Bloomington, Practice Building 연습 빌딩 입구


우는 애를 어르고 달래서 다시 연습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피아노 의자에 앉힌 다음에 쿠키 하나 쪼개서 입에 넣어주고 같이 연습을 시작했다. 왼손 따로, 오른손 따로, 천천히 천천히- 그리고 슬쩍 양손을 붙였더니 모양새가 갖춰졌다. 신이 나는지 작은 어깨가 들썩들썩, 마음이 놓인 녀석이 나를 빤히 보더니 '헤' 하면서 천진한 해바라기처럼 웃는다. 금방 전까지 그렇게 세상이 떠나가라 울더니. 나는 속으로 이렇게 뻔한 음악이 뭐가 그렇게 좋을까, 네가 캐논을 칠 수 있게 되는 게 그렇게 큰 행복일까, 그래 피아노 안돼서 우는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30분 후, 선생님이 내일 다시 봐줄 테니 이제 집에 가자, 울지 말고 얼른 가서 아이스크림 먹으세요! 라며 가방을 집어 들었더니 '선생님 먼저 집에 가세요. 저는 연습 더 하고 갈 거예요!'라고 했다. 그래서 찰스는 연습하고 나는 집에 와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오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