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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ul 14. 2021

‘메리 크리스마스’ 다음은 ‘해피 뉴 이어’


-팟캐스트 ‘마작하는 여자들, 조이럭클럽’ - 여자 나이는 주식이야 오를수록 짜릿하지 편에서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들으러 가기)



서른이 되면 죽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저는 스물아홉 살 마지막 날에 자살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학급은 술렁였고 선생님도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별로 친하지 않았고 지금은 연락처도 모르는 그 친구의 발언을 여태 기억하는 건,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늙는 게 누구보다 싫은 사람인데, 그래도 서른은 좀 빠르지 않나? 근데 내 인생에 서른 살이 정말 올까? 서른이 되면 죽고 싶어 질까? 나이가 그쯤 되면, 다 버리고 훌쩍 떠나버리기엔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이 생기지 않을까? ‘나이 듦’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그날을 기점으로 내 안에 우수수 돋아났다.


서른 살이 진작에 지난 지금 돌아보니 그때 했던 생각 중 들어맞은 건 거의 없다. 삼십 줄은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왔고, 나는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모르겠고ㅡ전세계약서를 쓸 땐 어떤 조항을 포함시키자고 말해야 호구로 안 보이는지, 각종 보험을 어떻게 들어놔야 영리한지,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 ‘복식부기의무자’와 ‘간편장부대상자’가 뭐 어떻게 다른지, 정말 도통 모르겠다ㅡ, 포기하기 아까울 정도로 손안에 뭘 많이 쥐고 있지도 못하다. 무엇보다도 난 지금 죽고 싶지 않다. 여전히 덜 자랐고 이룬 것도 별로 없어서, 그래서 더 살고 싶다. 열네 살의 나를 충격에 빠뜨렸던 그 친구도 사춘기의 자신과 원만하게 합의를 이룬 듯했다. 네일숍을 몇 개씩 운영하며 건실하게 잘 살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행이긴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서른의 맛이 씁쓸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여성으로 20대를 지나오는 내내 30대에 대한 두려움을 학습한 탓이다. 어린아이가 어떤 음식을 처음 먹을 때 먹을 만 한지 혀끝에 살짝 맛 보여주는 것처럼, 세상은 나에게 30대를 자꾸만 ‘미리 보기’로 보여줬다. 그 미리보기에 대해 기대되는 반응은 늘 “어풒푸푸, 너무 써!”였다.


2005년을 강타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이 서른이었다. 남자 주인공이 그를 사랑해주기 전까지, 그는 ‘평범한 서른 살 노처녀’에 뒤집어씌워진 스테레오 타입을 충실히 수행했다. 내내 초라했고 모두가 그를 안쓰러워했다는 뜻이다. 모두의 마돈나였던 효리 언니는 서른이 되자 곧잘 ‘한 물 간’ 취급을 받았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지금 생각하면 코웃음도 아깝다. 40~50대가 30대처럼 보인다는 건 칭찬인데 30대는 30대처럼 보이면 ‘아줌마’ 소릴 들었다. ‘아줌마’가 멸칭으로 자리 잡은 현실에부터 반기를 들어 마땅했지만, 대개는 ‘아줌마’가 되지 않으려 애쓰느라 바빴다. 피부결도 눈가 주름도 20대 초반 같지 못하면 끝장인 것처럼 호들갑 떠는 세상에 개개인이 정면으로 맞서긴 쉽지 않아 보였다. 쓴 맛을 조금만 봐도 단 건 더 달게 느껴진다. 30대가 되면 ‘훅 간다’는 막말을 들으며 사는 동안, 나 역시 20대의 매분 매초가 아쉬웠고 그 시간이 ‘달콤하다’고 굳게 믿었다.


그럼 우리의 20대는 온전하게 행복했을까? 사람에 따라 답변은 달라지겠지만 스무 살을 기다리며 보낸 10대 시절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서른까지 갈 것도 없이, 여자 나이는 스물다섯이면 꺾인다고 했다. 24일까지는 잘 팔리다가 25일이 지나면 줘도 안 가져가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처럼. 스물다섯까지 갈 것도 없이, 스무 살을 갓 넘긴 대학생들이 ‘노인네’가 돼버린 양 구는 게 문화로 굳어져 있었다. 스물둘, 셋 먹은 언니들이 스물, 스물 하나를 보며 “넌 어려서 좋겠다”라고 말했다. 나이 듦을 한탄하고 30대 이후를 걱정하면서 시집갈 걱정을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열아홉의 마지막 밤은 참 설레고 황홀했던 것 같은데,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 순간부터는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마인드가 글로벌해졌다. "나 만 나이로는 아직 20대임." 막연한 불안 속에 살았던 20대가 그래도 30대보단 낫다고 착각한 거다.


착각. 그것도 완벽한 착각이다.


30대는 굉장했다. 내 겉모습은 20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세상의 '어린애' 취급이 확 줄었다.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았다. 20대에 허슬 해서 취업을 해 둔 덕분에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20대에 이런저런 연애를 해 본 덕분에 나를 갉아먹는 감정 소모를 덜 하게 됐다. 20대에 학교에서 회사에서 좌충우돌하며 배운 모든 것들로 빚어진 내 모습을 30대가 되어서야 찬찬히 들여다보게 됐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고 누구와 잘 맞는지, 뭘 할 수 있고 뭘 못하는 사람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니 이쯤 되면 20대는 안정적인 30대를 보내기 위해 희생하는 번데기 시절 아냐?


'20대 청춘'에 퍼부어지는 찬사는 짐이었다. 바란 적도 없는데 머리 위에 불편하게 얹어진 미스코리아 왕관이었다. 더 젊고 어린 세대가 나타나면 금세 벗어줘야 하는. 그런 짐이 덜어진 채로 보내는 30대는 오히려 보너스 같았다. 30대의 나는 여전히 젊고 생기 있고 가능성이 넘치는 존재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20대를 더 열심히 살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남자들이 "인생은 30대부터"라며 자신을 나이 들수록 무르익는 와인에 비유할 때, 왜 우리만 가는 세월 한탄하며 시간을 허비했나 싶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진 않았다. 난 이대로 쭉 열심히, 즐겁게 살면 되고 세상에 두 번 다시는 속아주지 않을 거다.




20대를 다시 살라고 하면 얼마든지 다시 살 테다. 지금보다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불확실하고 막막한 시기를 꿋꿋이 버텨내고 나면 찾아오는 30대가 얼마나 신나는지 이제는 알고 있어서다. 서른 보다 서른 하나가 낫고, 서른 하나보다는 서른둘이 재밌었다. 한때는 두려웠던 30대를 이렇게 즐기게 되고 보니, 이다음도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소태처럼 쓰기만 할 줄 알았던 30대가 사실은 밥상에서 입맛을 한껏 돋워주는 씀바귀였던 것이다! 아니면 두릅...? 40대, 50대의 시간도 분명 새로운 자극들로 가득할 것만 같다.


아무도 나에게 30대가 이렇게 재밌다고 알려주지 않았어서 좀 억울하지만, 그래서 나는 더 많이 말하면서 살려고 한다. 여자 나이가 크리스마스라고? 크리스마스 좋지. 근데, ‘메리 크리스마스’ 뒤에는 반드시 ‘해피 뉴 이어’가 온다. 인생은 자꾸만 새롭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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