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by 라벤더

책제목이 심상치 않다.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니, 그의 직업은 판사이다. 직업이란 게 그 사람의 단지 일부일 뿐이지만, 책제목이 도발적이라 더 궁금해진다. 저자는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이 북적대는 술집 같은 것이 "자기가 생각하는 사회"라고 한다. 개인이 존중되는 사회. 강요가 없는 평화로운 공존과 타협이 존재하는 공간. 사랑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피해가 없으면 참아주기라도 하는 사회.


누구나 자기 몫의 아픔은 안고 살고 있더라는 거다.


판사는 법정에서 사회 곳곳에 벌어지는 고통들을 매일 직면한다. 저자는 빈부나 지위를 떠나서 누구나 자기만의 아픔을 갖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어쩌면 고통만큼은 평등할지도 모른다고. "부자도 권력자도 스타도 화려한 겉껍질 속에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가득했다. 건강 때문에 가족 때문에 자식 때문에 때로는 자기 자신 때문에 남모를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흔하디 흔해 보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 아이를 갖고 키우며 사는 일들이 실은 얼마나 전쟁같이 힘든 일인지......(21쪽)" 우리는 외면적인 모습만으로 어떤 모습들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모두 저마다의 고통들을 안고 살아간다. 무력함의 고통으로 몰아넣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 자신의 이해득실을 위해 상대에게 분노의 칼을 겨누는 일들. 평온한 일상은 유리처럼 쉽게 깨지기 쉬우며, 가장 지키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고정되고 획일적인 것보다 변화와 다양성이 좋고,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선호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껴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가고 싶은 것이 최대의 야심이다. (26쪽)


그가 묘비글을 남긴다면 이렇게 남기려나? 그는 이렇게 인생을 살고 싶단다. 최대한 자유로운 개인주의자로. 그러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팽배해 있는 집단주의를 비판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33쪽) 전근대적 집단주의 문화가 우리에게 불행을 초래하며 오히려 합리적인 개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려 머리말에서 "인간 혐오"라는 말로 시작하는 걸 보면 집단주의에 대한 상당한 혐오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면면을 이렇게 말한다.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복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37쪽)


너무나 공감되어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라 씁쓸하다. 우리의 몸과 정신에 스며들어있는 집단주의가 개인의 행복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성적, 학벌, 직장, 직위, 사는 동네, 차종, 애들 성적.... 삶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남들 눈에 띄는 외고나 적 지표로 일렬 줄 세우기를 하는 수직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완전히 행복하 수 있는 사람은 논리상 한 명도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상대적 박탈감과 초조함, 낙오에 대한 공포 속에 사는 사회다.(44쪽) 개인이 존중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수직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개인이 행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직업적으로 도움도 안 되고 오해받을 소지도 많은 글쓰기를 하는 이유도 그 나름의 행복추구라고 말한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개인적인 성향의 공부 잘하는 이단아쯤이었을까? 어릴 적 혼자 있길 좋아하는 모습에선 내 모습이 보였고, 젊은 시절의 방황과 방종? 의 이야기들은 배시시 웃음이 났다. 놀만큼 놀면서 공부도 잘하면(본인은 간교한 공부기술이라고 한다) 반칙 아닌가? 공부하나 달랑 잘해서 먹고살고 있는 불균형한 인성이라고 자처하는 저자.


아직도 이 사회의 아주 많은 이들에게 법이란 미지의 공포에 가깝다. 법조인들은 약자를 돕기 위해 자기 일을 포기해야 하는 대단한 희생이 필요 없다. 그저 월급 받고 일하고 자기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자기 일에서 5분만 더 고민하고, 말 한마디만 더 따뜻하게 해 주어도 큰 고난의 한가운데서 두려워하고 잇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황송할 만큼 말이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특권이 있단 말인가!(175쪽)


"인간 혐오"라는 단어로 글을 시작하지만 그는 따뜻한 인간애의 소유자였다. 또한 데이의 "세 황금문" 즉,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지침으로 말을 조심한다고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판사로서 그는 신중한 사람이다.


좋은 단편을 찾아 읽는 것은 쇠약해진 '문학 근육' 단련에 좋은 듯하다. 문학적 감수성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법관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 심리학이든 다른 어떤 학문이든 결국 인간의 여러 특성 중 범주화할 수 있는 보편성을 추출해서 보여준다. 문학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게 인간의 개별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 준다. 후자에 대한 이해 내지 상상력 없이 이루어지는 재판은 침대 길이에 맞춰 인간의 신체를 절단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전락할 수 있다. 문학은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 문학이 보여주는 인간 세상의 민낯은 전형적이지 않다. 작가들은 뻔하고 예측가능한 것에 관심이 없다.(249쪽)


문학을 사랑하는 판사라니, 다양한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정들, 어떤 것도 상상력 없이는 자기의 인식틀로 재단해 버리는 우를 범하기 쉽다. 그는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책 속의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희로애락과 비슷한 또는 다른 현실 상황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죄를 또는 다툼을 법에 입력하고 벌을 화해를 산출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판단의 틀을 허무는 것. 그것은 문학이 해줄 수 있는 일이다.


그가 바라본 집단주의 사회의 병폐와 교육제도는 너무도 공감되고 씁쓸했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어쩔 수 없이 해나가는 일들의 비겁함도 이해된다. 행복지수 최하위 국가로서 최상위인 북유럽의 합리적 개인주의를 받아들이기에는 우리의 경제성장에 비해 인식성장은 지체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더 많은 과제들이 남는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작은 책임부터 부담 없이 맡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어려서부터의 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평화로운 공존과 타협이 존재하는 사회를 위해서 말이다.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식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 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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