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아들 싱고가 료타에게 묻는 말을 나에게도 물었다. 나는 되고 싶은 어른이 되었나? 나의 꿈은 뭐였지? 아이들에게 인생은 이런 거야, 이렇게 살아야 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걸 보면 나는 되고 싶은 어른이 되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이 싱고처럼 묻는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머뭇거리다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직 되지 못했다고, 하지만 되고 못되고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료타의 대답은 그래서 공허하게 들린다.
료타는 15년 전 작은 문학상을 받은 후론 소설가의 삶보다는 흥신소의 일로 삶을 이어간다. 이혼한 아내의 뒤를 캐고 양육비를 경륜장에서 탕진한다. 심지어 돈이 될만한 아버지의 유품을 찾고 어머니의 연금을 노린다. 오십이 다 된 나이까지 그야말로 막장인생이다. 젊은 시절 재능을 인정받았기에 꿈을 포기할 수 도 없다. 남의 뒷조사를 하고 이중으로 돈을 뜯어내면서도 소설에서 쓰게 될 인상 깊은 말은 포스트잇에 남겨놓는다. 정통 소설에 대한 미련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기도 어렵다.
꽃도 열매도 맺지 못하는 귤나무를 아들처럼 돌보는 어머니. 애벌레가 잎을 먹고 예쁜 나비가 되었다는 장면은 참 먹먹하다.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아들의 인생을 응원하는 인생의 메시지는 곳곳에 가득하다. 유머 속에 깃든 삶의 통찰은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낸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모자관계로 나왔던 키키 키린과 아베 히로시가 함께 등장한다. 전혀 다른 스토리지만 료타(두 영화에서 이름도 같다)의 삶은 더 비루하고, 어머니는 자식들과 소통하는 조금 더 따뜻한 모습이다.
헤어진 가족은 태풍이 오는 날 하룻밤을 보낸다. 모래알 같은 그들이 함께 밥을 먹고 꿈을 공유하며 불편하지만 가족 같은 일상을 맞는다. "걸어도 걸어도"의 "참, 한 발씩 늦어"라는 대사가 연신 생각하는 이야기. 뒤늦게 아빠의 역할에 열심인 료타가 헤어진 아내에게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되고 싶은 어른이 되긴 힘든 인생. 아버지를 닮기 싫었던 료타는 아버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엄마가 싫어하는 아빠를 닮지 않으려는 싱고는 아빠를 닮아 글을 잘 쓴다는 칭찬도 거북하다. 거부하지만 닮아가는 모습들. 태풍이 지나가고 그들은 어떤 내일을 맞이하게 될까.
현실 위에 두껍게 얼어버린 과거라는 더께를 걷어내려는 듯 모자가 냉동실 냄새가 밴 아이스크림의 윗 면을 걷어낸다. 이제 막 사별한 현실감각이 적은 남편과 남편의 전철을 밟아가는 아들. 꿈을 가슴에 묻은 채 사십 년간 좁은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는 어머니가 아들을 응원한다. 되고 싶은 어른이 되지 못했지만 현재를 잘 살아가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토닥임.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많은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가 따뜻하다. 료타가 과거와 이별하고 첫 발을 내디딘 것처럼 즐겁게 현재를 살아가라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준다. 엔딩에 흐르는 하나레구미의 "심호흡"이라는 OST는 영화와 인생을 말해주는 듯 인상적이다.
어쨌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어
사진출처~나무위키
심호흡
꿈꾸던 미래가 어떤 것이었건
잘 가 어제의 나
맑게 갠 하늘에 비행기구름
나는 어디로 돌아갈까
잃어버린 건 없을까
잘 가 어제의 나
눈을 감고 불러보네
그 시절의 그대를 만나고 싶어서
그대여 나는 아직 기억해
그대여 나는 잊지 않을 거야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돌아보지만 그대는 없어
그대여 나는 아직 기억해
그대여 나는 잊지 않을 거야
그대여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에도
그대만은 나를 믿어주었지
꿈꾸던 미래가 어떤 것이었건
Hello again 내일의 나
놓아버릴 수 없으니까
한 걸음만 앞으로
한 걸음만 앞으로
또 한 걸음만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