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을 넘어선다는 것

「면도날, 서머싯 몸」

by 라벤더

『달과 6펜스』와 『인생의 베일』을 지나, 마침내 『면도날』에 닿았다. 앞선 두 작품보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훨씬 더 묵직하고 깊다. 아마도 서머싯 몸이 일흔이 넘어서 쓴 소설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오래 마주한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문장들이 있다.


『달과 6펜스』가 꿈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면, 『면도날』은 그보다 더 깊은 곳, 마음의 그늘과 침묵을 향해 묻는다. 전쟁에서 친구의 죽음을 지켜본 래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 현실을 등지고 길 위에 오른다. 문헌 속에서, 고행 속에서, 때로는 고독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답을 찾으려 한다.


반면 이사벨은 래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현실을 택하고, 엘리엇은 죽는 날까지 사회적 체면을 놓지 않는다. 몽마르트르의 수잔, 상실의 고통 속에 흔들리는 소피까지 — 모두가 저마다의 삶을 버티고 살아낸다.


서머싯 몸은 말한다. 어느 삶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고. 누구에게나 그럴 만한 사정이 있고, 그만의 이유가 있다고.


우린 누구나 한 번쯤 실존의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된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스트릭랜드처럼 이상을 향해 달리기보다, 안정된 현실에 발을 붙인다. 불편한 질문은 미뤄두고, 오늘의 안온함을 택한다. 래리가 끝내 어떤 답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답을 찾으려는 그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길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도 때때로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잃고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 책이든, 여행이든, 고요한 한순간이든 그 질문은 삐걱이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엘리엇과 이사벨이 래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누군가의 선택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어리석어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도 우리는 안다. 이상만을 좇을 수는 없어도,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을.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워라-카타 우파니샤드"


삶이란 결국 그 날카로운 면도날 위를 조심스레 건너는 일일지도 모른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그럼에도 건너보려는 몸짓 자체가 우리를 조금씩 구원으로 데려다 놓는다. 우리는 안다. 면도날을 넘어서려는 몸짓, 구원을 향해 다가서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의미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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