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인생, 은희경」
책을 읽을 때 자연스레 연필과 포스트잇을 찾는다. 마음에 닿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는 작은 생각의 조각들을 적어두며, 포스트잇에 글을 관통하는 단어 하나를 붙인다. 그렇게 한 권을 읽고 나면 책은 어느새 온기와 사유의 흔적으로 가득해진다.
오랜만에 은희경 작가의 『태연한 인생』을 펼쳤다. 한 시절 그의 소설 속에서 숨 쉬듯 지내던 때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역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걸까. 밑줄은 자꾸만 늘어나고, 문장은 오래된 기억을 깨워 천천히 울림을 만들었다.
#류의 아버지와 어머니
시간의 흐름, 그 길어진 그림자 속에서 어머니가 끝내 마주한 것은 자신의 인생이 서서히 기울어가는 모습이었다. (13쪽)
류의 아버지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통화하던 한 여인에게 반한다. 훗날 류의 어머니가 되는 사람이다. 사랑은 그렇게 우연처럼 시작되었고, 어머니는 오랜 애인과의 관계를 정리한 뒤 아버지와 결혼한다. 생활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서사의 삶을 꿈꾸던 어머니는, 운명적 이미지의 삶을 좇던 아버지와 멀어지며 점점 냉소적으로 변한다. 상실의 삶은 결국 고통과 고독이 된다.
#요셉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버스들 중 어느 것이 일회적 우연이고 어느 것이 내 인생의 플롯으로 이어지는 노선인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어느 날, 하찮은 지뢰 하나가 터져 인생을 치명적으로 흔들어버리는 순간이 도착한다. (103쪽)
쿤데라의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이 대목은, 요셉이 들려주는 인생의 공허한 우연성이다.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류, 그리고 예고 없이 떠나버린 그녀의 빈자리는 그의 삶을 깊은 상처로 물들인다. 우리는 모두 부조리한 세계의 거대한 패턴 앞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며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223쪽) 그의 삶도 그 패턴 속에 갇혀버린, 자의식 강한 작가의 모습이다.
#류
낯선 나라 어딘가에서, 류를 고독과 고통으로 밀어 넣으려고 기다리는 태연한 인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77쪽)
사랑의 매혹이 사라졌을 때 그것이 생활의 이데올로기가 되고, 고통과 고독으로 변하는 과정에 류는 허무감을 느낀다. 부모의 삶이 그랬다. 그는 열정이 끝나는 소실점(263쪽)을 두려워한다. 요셉에게 매혹의 추억만 남기고 도망치듯 떠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안
한때 대학에서 시간강사였던 류와 그의 조교였던 이안. ‘위기의 작가들’이라는 영화에 요셉을 등장시키고 싶어 한다. 교묘한 의도를 품고 요셉에게 접근하며, 과거 자신을 무시했던 상처를 끄집어낸다. 그러면서 작가라면 위선적인 자기 합리화 대신 구원의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기억의 편집
“누구나 지나간 일은 자기 식대로 편집해 기억한다.” (11쪽)
처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반한 장면이 사실은 어머니가 애인과 나누던 매혹의 순간이었다는 사실.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에게 ‘새로운 삶’은 없었고,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은 결국 두 사람의 간극을 운명처럼 넓혀 갔다. 어머니의 일방적 희생이라 여겼던 류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 안에 담긴 아버지의 고독과 상처를 마주한다.
#서사와 이미지의 혼재된 삶에서 연대하기
"예술은 말이야, 개인에게 자기 자신을 되돌려주는 거야.(152쪽)
“예술이 하는 일은 한마디로 패턴을 깨는 것이야.” (108쪽)
“가장 나쁜 것은 자기 인생의 서사에 스스로가 사로잡혀 있는 거였다.” (209쪽)
우리는 가족, 사회의 이데올로기라는 틀 안에서 산다. 예술은 그 틀을 부수며 고통의 독자성을 인정하게 하지만, 때로 너무 쉽게 ‘도덕’이라는 뻣뻣한 칼날을 겨눈다. 류의 아버지와 어머니, 류와 K, 류와 요셉, 요셉과 이안처럼 타인의 삶에 독자성을 인정하지 못할 때 관계는 어그러진다. 태연해 보이는 인생의 표면 아래에서조차 부조리는 고요하게 움직인다. 우리가 문학이나 예술을 통해 공감의 연대를 키워간다면 삶이 조금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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