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노자의 도덕경은 네 종류의 지도자에 대해 말한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 그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좋지 못한 것은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라 했다.
내란과 외환, 계염령을 선포하여 독재를 도모한 자들이 거짓말과 변명을 늘어놓는 믿지 못할 뉴스를 접하며 무위(無爲)의 정치, 상찬의 정치, 독재의 정치를 넘어 마지막을 점하고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본다. 공자의 논어에도 나라의 존립을 위해서는 군대와 식량보다 믿음이 중요하다고 했다. 덕치를 군자의 정치라 말하는 논어 속 이야기가 공허하게 울린다. 도덕성과 믿음을 저버린 정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자공이 정치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식량을 풍족하게 하는 것, 군비를 넉넉히 하는 것,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자공이 말하였다. "어쩔 수 없어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군대를 버린다."
자공이 여쭈었다. "어쩔 수 없어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식량을 버린다. 예로부터 모두에게 죽음은 있는 것이지만,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
논어. 안연(顔淵). 7편
부끄럽게도 나는 선거에 회의적이었다. 그 인물이 그 인물 같았다. 이번 일을 보면서 플라톤의 말이 무섭게 다가온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무관심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장본인이다. 덕분에? 대통령선거 때문에 날을 꼴딱 세웠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13쪽)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첫 문장이 가슴에 와서 박힌다. 요조는 익살이라는 가면으로 불안과 공포를 가린다. 자신과 타인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화를 내는 인간에게서 동물의 본성을 본 후 타인의 기대에 순응하며 진실을 회피하는 아이가 된다. 어느 자리에서나 웃음을 주는 모습 이면에 우울과 긴장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며 타인에게 맞춰가는 삶은 부끄러움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면서도 태연한 인생들을 보며 요조는 고독 속으로 침잠한다.
인간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가슴 밑바닥에 꾹꾹 눌러놓으며 완벽하게 정체를 숨기지만, 친구 다케이치는 간파하고 만다. 이것이야말로 가슴속에 꼭꼭 눌러서 감추고 감추었던 내 정체다. 겉으로는 명랑하게 웃으며 남들을 웃기고 있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음산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41쪽) 요조는 내면을 꿰뚫어 본 다케이치 덕분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면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을 그리지만 그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화방에서 만난 호리키 마사오는 꼴리는 대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상대방의 생각 따위는 완전히 무시하는.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 죽기보다 싫은 익살을 떨어야 했던 요조보다 더 익살을 떨었던 호리키. 그에게 배운 술, 담배, 창녀, 좌익 사상은 잠시나마 인간 공포증을 잊게 한다. 요조의 고통은 시간이 흐르면 아무는 상처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상처와 통증을 점점 더 정겹게 느끼며 비합법, 음지의 세계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62쪽) 인간들의 분쟁이 두려워 달아나고 다가온 행복마저도 회피하려 든다.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허울, 독선 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감성은 세상에 대한 공포로부터 달아나도록 만든다. 자살방조는 병자로 취급되어 고소유예 되지만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검사에게서 모멸감을 느낀다. 익살을 연기할 기력조차 없어서 넙치의 멸시를 감당한다. 요조는 남들에게 호감을 살 뿐 사랑하는 능력에는 결함이 있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의 관계에서 필연적인 허영, 체면 차리기, 타산적 약삭빠름, 냉랭하고 교활한 이기주의와 거리가 먼 인간이다. 능수능란한 관계의 기술에 서툴고 바보스러울 만큼 순수하기 그지없는 인간. 분위기가 변하는 게 두려워 불이익당할 줄 알면서도 다정함으로 일관해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기도 하고, 고통을 눌러놓은 채 관계를 지속하는 동안 에너지는 소진된다.
끊임없이 인간의 삶에서 도망치는 요조를 질책할 수 없다.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살았다고 말하는 요조가 인간실격인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저버린 지도자. 지도자라는 말도 부끄럽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들이 판치는세상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요조는 차라리 인간적이다.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기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심연의 고통을 익살로 연기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아아, 저에게 냉철한 의지를 주소서. '인간'의 본질을 알게 해 주소서. 사람이 사람을 밀쳐내도 죄가 되지 않는 건가요. 저에게 화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90쪽) 약물중독, 정신병원 감금 등 폐인의 삶으로 점철되었던 요조에게 그립고도 두려운 존재인 아버지는 고뇌의 항아리를 묵직하게 만든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엄마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던 아들은 비상식적인 일을 저질렀다. 모성의 상실이 빚은 참극이다. 요조가 사람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며 달아나려 했던 것은 어찌 보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갈구였는지 모른다. 배고픈 사람이 청결보다 굶주림을 먼저 채우듯 애정결핍인 아이는 아버지의 독선과 냉담을 관심과 사랑으로 느낄 수 있다. 아이는 깨진 거울에 비친 일그러진 모습을 자신의 정체성이라 믿는다. 구멍이 뚫린 항아리에 물을 붓듯 인정과 사랑에 목마른 인간, 관계에 위축되고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요조는 마음의 허기를 익살과 도피로 채우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내면의 에너지가 온통 타인중심으로 소진되는 요조의 인생 속에 우리의 모습이 있다. 부모나 사회의 인정을 바라며 그들의 즐거움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감추려는 모습.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며 고갈되는 에너지와 상실의 상처. 요조가 보여주는 삶은 극단적일 수 있지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울림이 들린다. 소설 속의 인물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며 위로와 힘을 얻는 것. 소설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요조는 스물일곱 해동안 아비규환의 삶을 살아내고 얻은 성찰이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단단한 내면으로 부끄러움도 장착한다면 너무 이상적 인가. 책표지에 그려진 에곤 실레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인상적이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134쪽)
에곤 실레,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레오폴드 미술관 소장,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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