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공동선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by 라벤더

저 멀리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가 달려온다. 그 끝에는 5명의 인부가, 다른 레일에는 1명이 일하고 있다. 브레이크는 고장 났지만 방향은 바꿀 수 있다. 직진하면 5명이 죽고 방향을 틀면 1명이 죽는다. 기관사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또 다른 상황. 나는 철로 위 다리 위에 서있다. 같은 상황이고 비상철로는 없다. 내 옆에 아주 덩치 큰 남자가 서있다. 그를 철로로 떨어뜨리면 5명을 구할 수 있다. 그 사람을 밀겠는가? 다섯 명보다 한 명을 희생시키는 게 낫다고 한다면, 한 명 쪽으로 전차를 돌리는 건 옳고, 남자를 다리 아래로 미는 건 옳지 않을까.

수많은 도덕적 딜레마상황은 삶과 맞닿아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딜레마를 통해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신념들이 해체되고 그런 상황에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수전 손택이 "문학은 자유이다"에서 말했던 반(反) 경험의 제공,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리는 경험. 정치철학은 문학과 맥이 닿아 있다. 수용적인 태도는 비판적 자세로 변하며 어떤 문제도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는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라는 세 가지 입장에서 딜레마상황을 바라보도록 돕는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같은 경험을 하지 않고 어떻게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을까.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말한다.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야 한다고. 연민의 극대화로 무감각에 이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안전지대에 있는 우리가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과연 정당 한가.


미덕에서 출발하는 고대의 정의론과 자유에서 출발하는 근현대의 정의론.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18세기의 칸트, 20세기의 존 롤스까지 최선의 삶을 위해 정의를 고민한다. 우리가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하는 이유는 불공정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한 아이보다 부모의 돈과 권력으로 대학을 들어가고, 잘 보이기 위해 거짓 경력을 이력서에 넣어 타인의 기회를 빼앗고, 성실히 일해서 납세의 의무로 낸 세금이 소수의 탐욕을 위해 쓰였다는 사실이 공분을 산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망각하는 탐욕은 좋은 사회라면 억제되어야 할 태도다. 도덕성이라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탐욕의 기차는 몇십 년을 달려왔다. 상황에 따른 적절성이나 공동선을 위한 판단의 과정이 없었기에 그들의 추락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33쪽)


도덕적 딜레마가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의 신념을 나누고 대화하며 타협, 수용의 과정을 거친다면 보다 나은 해결방법이 있을 것이다.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대한 다양한 주장 속에서 혼란의 힘과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이 바로 철학의 출발점이다.(45쪽)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시민을 동굴에 갇힌 포로로 비유하며 정의의 의미와 삶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편견과 판에 박힌 일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자원 군, 대리모, 동성혼, 낙태와 줄기세포논란 등 많은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정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보다 비판적인 안목으로 돌아보게 한다. 정책 입안자들의 자녀가 참전의 부담을 나눠야 했다면 전쟁은 시작도 안 했을 거라는 말에 공감이 된다. 불공평이 만연한 사회에서 자원 군은 자유가 아니라 강제라는 것. 자유시장에서의 선택들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고민해 볼 부분이다. 노력도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롤스의 견해가 흥미롭다. 성공은 우연의 요소가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았거나 자신의 재능이 사회가 원하는 특성이라면 출발선이 다를 수 있다. 성공을 노력의 결과로만 보게 된다면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노력이라는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편법을 통해 성공한? 정치인들이 국민들에 대한 책임의식이 결여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그들만 있다.


동기를 중요시한 칸트, 평등을 옹호했던 롤스,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하려면 재화의 텔로스, 목적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의 목적은 좋은 삶의 구현이기 때문에, 최고 공직과 영광은 페리클레스처럼 시민의 미덕이 가장 뛰어나고 무엇이 공동선인지를 가장 잘 파악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273쪽) 윤석렬은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동어반복과 부하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 민주주의 근간인 투표로 당선되지도 않은 김건희는 국정을 좌지우지하며 나라의 국보에도 손을 대고, 자칭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람이 참 많은 일들을 했다. 그들의 죄를 밝히려면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시민의 미덕이 뭔지, 공동선이 뭔지 애초에 관심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정치는 가식, 이해관계, 부패를 떠올리기 쉬운데 아리스토 텔레스는 정치 참여를 좋은 삶의 필수 요소로 본다. 우리는 언어를 구사하는 정치적 존재라는 것이다. 정치를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선의 필수 요소로 본 그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요즘이다. 좋은 삶을 위한 필수 요소인 정치를 외면했다면 오늘의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 통합을 위해 철저한 단죄가 있어야 한다는 도올 김용옥선생의 말씀에 동의한다.


정의로운 사회에 필요한 연대와 상호 책임 의식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 연대 의식이 사라지기 때문에 시장의 불평등에 대한 문제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도덕에 기초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371쪽) 시장과 정치의 도덕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공동선은 함께 고민해 볼 문제다. 하,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열띤 토론, 참 부러운 교육방식이다. 철학은 멀리 있지 않다. 삶 안에 있다.


행복을 극대화하고 자유를 존중하며 미덕을 기르는 행위의 의미, 그리고 그와 관련한 이상이 서로 충돌할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정치철학이 이런 상황을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주장을 다듬고, 민주 시민으로서 우리가 직면한 여러 대안에 도덕성을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34쪽)


#정의란 무엇인가_마이클 센델_와이즈베리 #문학은 자유이다_수전 손택 #국가론_플라톤 #정의와 공동선 #읽고 쓰고 그림책수업하는 전직 27년 초등교사 #북샵라벤더 책방지기 #경주그림책서점 #경주독립서점 #경주읍성동네책방 #경주서점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이전 10화어떻게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