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KBS 스페셜 "앎"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중학교 음악교사로 근무하다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은 엄마의 소망은 서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살아있는 것.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가족여행을 한다. 더 이상의 치료는 환자를 지치게 할 뿐이라는 마지막 처방을 받고 집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선택한다. 소파에 누워 진통제를 맞는 게 다지만 아빠와 아이가 노는 모습만으로도 행복하다. 극심한 고통으로 집에 온 지 16일 만에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별. 서진이는 잘 키울 테니 안심하고 먼저 가 있으라는 남편의 따뜻한 속삭임 속에 편안한 죽음을 맞는다.
모두에게 찾아오는 죽음. 말기암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이 순간을 위해서 사는 것. 그래서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어떻게 살 것인가"로 읽었다. 짧던 길던 주어진 삶을 살다 생과 사의 길목에서 어떤 죽음을 맞아야 할까. 삶을 연장한다고 장담할 수 없는 연명치료 대신 호스피스 치료로 존엄한 죽음을 맞는 것. 함께 하는 날까지 행복한 동행을 하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가장 진솔한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것. 죽음, 아름다운 이별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남편이 쓰러지고 나서 나는 아침마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포옹을 한다. 남편은 너무 비장하다며 다큐를 개그로 바꾸지만 나만이 그 드라마 같은 현실에서 예외일 수 없다. 딸에게 엄마만이 가르칠 수 있는 걸 허락해 달라며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는 말기암 선고를 받은 엄마의 바람은 무심코 흘려버리는 삶의 가치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일상,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오늘은 어제 살다 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아니던가. 죽음이 삶의 연장이라면 삶이 아름다워야 죽음도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인간에게는 약물이나 과학을 뛰어넘는 치유력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죽어가는 환자 중에 사랑과 접촉과 교류를 갈망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배웠다. 죽어가는 환자는 의사와의 안전거리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솔직함을 갈망했다.(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생의 수레바퀴, 129쪽) 정신의학자의자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자신이 죽음을 연구하는 것은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삶의 연결인 죽음을 아름답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삶의 마지막을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진 외딴곳에서 홀로 연명치료를 받으며 외로이 죽어갈 것인가, 정겨운 풍경과 가족의 사랑 안에서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다하며 평온한 죽음을 맞을 것인가. 그녀는 매 순간이 선택인 삶에서 죽음이 예외인 것에 의문을 갖고 평생 연구한다. 마지막 저서인 책에서 무엇보다 값진 통찰의 메시지를 전한다. 죽어가는 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만 하면 삶에 대해 무한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생의 수레바퀴, 145쪽)
그녀는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체력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컴퓨터 자판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우선순위 중 하나였다. 스카이프와 이메일은 아버지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친구나 친척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통증 없이 살 수 있기를 원했다.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요."아버지가 말했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저자의 아버지는 호스피스 치료를 선택한다. 퀴블러 로스가 치료에 있어서 병명보다 인간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간호사는 저자의 아버지를 치료해야 할 환자로 보지 않고 끝까지 원하는 대로의 삶의 질을 누리길 원하는 한 인간으로 바라본다. 식은땀, 불안감, 사고력 감퇴, 감정 기복 등 부작용에 비해 증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화학치료를 원치 않는 아버지의 요구를 존중한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대신 오늘을 최선의 상태로 살기로 한 결정의 열매를 눈으로 확인했다. 삶의 의지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삶은 호전된다. 끔찍하게만 여겼던 종양과 함께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툴 가완디는 의사로서 환자에게 두렵게 들릴법한 많은 선택지를 제공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호스피스치료를 받고 마지막의 생을 그답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정보를 주는 의사에서 인간 적인 관심을 두는 의사로 변한다. 나는 내가 다시 '정보를 주는' 의사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 걸 깨닫고는 부끄러워졌다. '여기 사실과 수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한 발짝 물러나 우리 아버지에게 했던 질문들을 던졌다. 가장 두렵고 걱정스러운 게 무엇인지, 할머니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무엇인지, 그걸 이뤄 내기 위해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를 말이다.
사람들이 매 순간 느끼는 즐거움과 고통을 측정한다는 건 인간의 근본적인 면을 간과하는 행위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삶이 실은 텅 비어 있을 수도 있고, 겉으로는 곤경에 처한 것 같은 삶이 실은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다. 경험하는 자아-순간에 몰입하는 자아-와 달리 기억하는 자아는 기쁨의 정점이나 비참함의 심연만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인식하려 한다. 그리고 이는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끝나는지에 따라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한정된 삶에서 꾸준한 행복감을 선호하는 경험하는 자아와 강렬한 기쁨을 선호하는 기억하는 자아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다.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은 한에서 완화치료수술과 최소의 치료로 통증을 줄이고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을 선택할 기회를 가진다. 조용히 잠에 빠져들듯 마지막 숨을 내쉬며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주얼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죽음도 그러길 바라본다. 물리학, 생물학, 우연이 지배하는 삶의 마지막을 제어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용기를 생각한다. 인간의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병과 화학치료의 필연관계와 병원에서 맞는 죽음을 당연하다고 여겼던 내 편견을 들여다본다. 최선의 치료로 완치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존엄한 죽음을 위한 인간다운 치료와 선택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슬픔과 두려움이라고 여겼던 죽음이 자연스러운 생명의 사이클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편안해진다.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희망을 가져 본다. 퀴블러 로스와 아툴 가완디의 만남은 죽어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삶을 돌아보게 한 소중한 시간이다. 아툴 가완디는 건강과 생존보다 환자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의료계 종사자의 도덕적 의무가 아닐까라고 제안한다. 이런 인간 적인 의사를 만나고 싶다. 생명연장을 보장할 수 없음에도 화학치료로 고통을 주는 것을 최선을 다했다고 여기지 않는 의사말이다. 소설가 필립 로스가 "에브리맨"에서 노년은 투쟁이 아니라 대학살이라고 일갈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희생하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이별의 순간까지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고 싶다.
기술 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학자들이 '죽는 자의 역할'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잊고 말았다. 그것이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 두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죽는 자의 역할'이라는 개념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죽는 자에게나 남는 자에게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우리가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둔감하게 도외시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수행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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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2일 글 쓰다 #그때도 남편이 쓰러졌었구나ㅠㅠ 지금도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병원에 입원 중ㅠㅠ #내 심장 살려주 #삶을 말하는 죽음에 대한 책 #'숨결이 바람 될 때'가 생각나는 책 #읽고 쓰고 그림책수업하는 27년 전직 초등교사 #북샵라벤더 책방지기 #경주그림책서점 #경주독립서점 #경주읍성동네책방 #경주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