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권위적인 자리에 있는 누군가, 즉 국가, 상사, 교사, 부모의 지시에 상냥하고 단호한 목소리로(29쪽) 거부의사를 표현한다면 어떨까.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네, 하겠습니다"가 미덕인 사회에서 이러한 돌출발언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월 스트리트(wall street)에서 평안을 깨는 변론보다는 부자의뢰인의 재산축적을 위해 삼십 년간 일해온 초로의 변호사가 화자이다. 햇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수많은 벽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이기적인 자본주의는 피어났고, 화자는 일의 능률을 위해 필경사들을 고용한다. '필경사'는 복사기가 없던 당시에 필사를 하고 글자 수대로 돈을 받던 직업이다.(100쪽) 자본과 노동으로만 움직이는 삭막한 곳, 그곳은 월(wall) 스트리트다.
벽은 오래되고 늘 그늘이 져 있어서 거무스름하고 벽은 창문에서 십 피트도 채 떨어지지 않은, 풍경화가들이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결여되어 있어서 특히 단조로운 그곳(11쪽)에서 화자와 두 필경사, 한 명의 사환이 일하고 있다. 오후가 되면 쉽게 흥분하고 허둥대며 허영심이 가득한 터키, 소화불량, 성마름, 신경과민을 오가며 오후에만 업무능률이 오르는 니퍼스, 아들이 판사가 되길 바라는 맘으로 사환일을 하게 된 너트.
신중함과 체계성을 자신의 강점이라고 믿는 화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한병철의 "피로사회"의 주증상인 과다활동성과 과민성 소화불량이라는 신경성 질환을 앓고 있는 터키와 니퍼스를 유용하게 이용한다. 화자가 사람을 상대하는 방식은 오로지 "쓸모 있음"이다. 다행히 그들의 업무효율이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있어 화자는 다행이라고 여긴다. 오후에 소란스러운 행동을 줄여볼 요량으로 터키에게 비싼 코트를 선물하지만 말에게 너무 많은 귀리를 먹이면 좋지 않은 이치처럼 풍요가 그에게 해가 되었다고 믿는 화자.(22쪽) 마치 자본주의 사회에 필요한 노동자들이 먹고살만큼만 월급을 주는 이치처럼, 자본가 계급의 화자는 노동자의 풍요를 해롭게 여긴다. 또한 니퍼스가 필사원이라는 단순업무를 못 견뎌하고 법률문서의 원본작성 같은 전문적인 업무를 부당하게 취하는 등의 온당치 않은 행위에서 드러나는 야심을(18쪽) 못마땅해한다. 노동자는 자본가가 시키는 단순한 일만 해야 하는 것이다. 감히 그들의 전문적인 업무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규율을 깨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젓빛유리 접문으로 나누는 것(25쪽)도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계급을 드러내며, 노동자가 보이는 야심은 "병든 야심(20쪽)"이라고 치부하는 화자의 평온한 인내와 배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이용하기 위한 위선적인 가면일 뿐이다.
화자의 사무실은 일은 점점 밀려들고 창백하리만치 말쑥하고, 가련하지만치 점잖고, 구제불능으로 쓸쓸한 모습의" 바틀비"를 고용하게 된다.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27쪽) 필사하는 바틀비의 근면성은 고용주인 화자를 기쁘게 한다. 그는 화자에게 매우 유용한 인물인 것이다. 필사한 문서를 검증하고 기타 심부름도 하는 걸 관례로 여기는 그곳에서 사흘 째 되던 날, 문서검증을 위해 바틀비를 부르지만 그는 은둔처에서 나오지 않고 상냥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29쪽)라고 대답한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바틀비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사무실 사람들. "네, 변호사님, 저는 바틀비 씨가 살짝 돌았다고 생각합니다."(35쪽) 과다활동성과 과민성 소화불량에 걸려 이를 갈며 욕하는 소리를 내면서도 보수를 받았기에 시키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믿는 터키와 니퍼스에게 바틀비는 이해불가의 인간이다. 그 순간에도 화자는 바틀비를 유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바틀비를 해고하지 않고 데리고 있는 것은 영혼의 양심을 즐겁게 할 적선을 쌓아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사처럼 흐트러짐 없지만 주검 같은 느낌을 주는 확고하고 침착한 바틀비.(44쪽) 필사의 검증과 잔심부름을 거부하다 급기야 필사까지도 거부하고 그는 칸막이 뒤의 어슴푸레한 창 앞에 한참을 서서 꽉 막힌 벽돌 벽을 내다보곤 했다.(49쪽) 죽음을 상징하는 벽 앞에서 몽상에 빠지는 바틀비.
내가 최초로 느꼈던 감정은 순전한 우울과 진심 어린 동정심이었다. 그러나 바틀비의 쓸쓸함이 내 상상 속에서 점점 커져갈수록, 그만큼 그 우울은 두려움으로, 그 동정심은 혐오감으로 녹아들었다. 비참함에 대한 생각이나 비참한 광경은 어느 선까지는 우리에게 가장 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 지만, 몇몇 특별한 경우 그 선을 넘어서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동시에 끔찍한 진실이다. 그 이유가 예외 없이 인간의 마음이 선천적으로 이기적인 탓이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과도한 구조적 악을 고칠 희망이 없다는 데 기인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동정심은 때로 고통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동정심이 효과적인 구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상식은 영혼에게 동정심을 떨치라고 명한다.(50쪽)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화자. 인간적인 관심으로 그를 도와주려는 화자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하지만 역시나 바틀비는 같은 대답뿐이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내가 그에게 베푼 부인할 수 없이 좋은 대우와 특전을 고려하면, 그의 비뚤어진 고집은 배은망덕한 것이었다.(52쪽) 사무실을 점유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일도 하지 않으며 퇴사거부의사를 밝히는 바틀비를 보며 너무도 답답해하는 나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입장과 그렇게 된 이유를 궁금해하기보다 매끄러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불편과 저항을 초래하는 그의 행동이 기이하게 보였던 것이다. 심지어 배려와 자선 속에 위선을 숨기고 있는 화자인 변호사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니. 내 시선이 얼마나 자본주의 안에 머물고 있는지 바틀비라는 인물을 통해 알게 됐다. 소극적인 저항처럼 열성적인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없다.(38쪽) 바틀비를 경멸하던 다른 필경사들도 "~~ 택한다"라는 바틀비를 말투를 따라 하게 되고 고용주인 화자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명백한 사실은 이제 그는 내게 목걸이로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감당하기 괴로운 맷돌이 되어 있었다. (59쪽) 화자는 유용성이 사라진 자를 제거하고 싶지만 떠나지 않는 것을 선택한 바틀비 때문에 결국 사무실을 옮기게 된다. 바틀비는 폐허가 된 사원의 마지막 기둥처럼 건물에 남아 유령처럼 떠돈다.
건물주는 유령처럼 건물에서 출몰하는 바틀비를 부랑자로 몰아 구치소로 보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은 바틀비와 같은 인간은 부랑자나 폭도로 몰리기 쉽다. "자네에게는 이곳이 그렇게 고약한 곳은 아닐 거야. 여기 있었다고 해서 자네에게 어떤 수치스러운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건 아닐세. 보게, 사람들이 혹 생각하듯 그리 형편없지 않아. 자, 저기 하늘이 있고 여기 잔디가 있잖은가." (85쪽) 화자도 바틀비를 면회하며 그에게 수치 스런 혐의가 없음을 시인한다. 죽음의 벽으로 둘러싸인 감방을 미화하는 화자의 위로도, 요리사에게 바틀비를 특별히 부탁하는 모습도 자기 면피성 친절일 뿐이다.
몸은 이상하게 벽 밑에 웅크리고 무릎은 끌어안고 모로 누워 차가운 돌에 머리를 대고 있는 쇠약한 바틀비가 보였다. 그러나 움직임 이 전혀 없었다. 나는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몸을 굽혀보니 그는 멍하니 눈을 뜨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깊이 잠들어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찌릿한 전율이 내 팔을 타고 척추까지 올라갔다 발로 내려갔다.(90쪽)
바틀비는 수취인 불명의 죽은 편지(Dead Letter)를 소각처리하던 우편물 하급 직원이었다. 관련 행정기관의 변경으로 갑자기 해고를 당하게 되고 화자의 사무실에 오게 된 것이다. 용서와 희망과 희소식을 전하는 생명의 심부름을 하던 편지들이 급히 죽음으로 치닫는(93쪽) 모습들을 보며 삶을 위한 모든 노력은 죽음으로 귀결된다.(한병철의 "피로사회"중에서)는 진실을 알아버린 걸까. 인생의 덧없음으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게 된" 바틀비는 의미 없는 일들을 줄여가고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바틀비의 죽음과 함께 "허물어진 사원의 마지막 기둥"마저 쓰러진다. 바틀비는 "대서양 한가운데의 난파선"처럼 침몰한다.( 한병철의 "피로사회"중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부품으로 전락하여 폐기 처분된 바틀비가 할 수 있는 저항이란 게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니 기이했던 행동들이 이해되고 그를 답답하게 여겼던 내 시선이 부끄러웠다. 하비에르 사발라의 공허한 먹색의 그림들과 허먼 멜빌의 100쪽도 안 되는 중편소설은 그 어떤 장편소설보다 긴 여운과 묵직한 울림을 준다.
사서(死書)라! 사자(死者)처럼 들리지 않는가!...
사서를 취급하고 분류하고 불태우는 것보다 더 그 절망을 키우는 데 적합해 보이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 우편물들은 매년 대량으로 소각된다.....
절망하여 죽은 자들에게 용서를,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죽은 자들에게 희망을, 구제 없는 재난에 질식해 죽은 자들에게 희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나오기도 한다. 생명의 심부름을 하는 그 편지들은 급히 죽음으로 치닫는다.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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