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법륜스님은 묻는다. 일제강점기에 검사로 성실히 일하던 인물이, 해방이 되어 실패자로 전락했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독립이라는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과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염원하는 과제를 무시하고 개인의 목표만을 위해 살았다는 것. 검사를 그만두지 않더라도 독립운동가들을 빼준다거나 독립자금을 지원했다면 그나마 과제를 무시하지 않았을까. 창가에 들이치는 뽀얀 햇볕과 창틀이 만들어내는 네 모 한 빛무늬를 볼 때면 나는 신영복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분의 옥중서간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도.
동향인 우리 방에는 아침에 방석만 한 햇볕 두 개가 들어옵니다. 저는 가끔 햇볕 속에 눈감고 속눈썹에 무수한 무지개를 만들어봄으로써 화창한 5월의 한 조각을 가집니다.(150쪽)
김기춘의 일본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의 한 희생자는 희긋희긋한 머리를 한 채 증언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억울하지 않다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기회주의로 살아온 사람들 속에서 시대의 고뇌와 양심들은 그래서 빛난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탄압하려 한들 그들의 목소리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풀 같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생명과 영혼을 바친 이들에게 빚진 오늘을 살고 있다. 시대의 양심이셨던 신영복 선생님, 20년이라는 그 긴 암흑의 세월을 옥중에서 견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 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 (49쪽)
1966년 이른 봄날 작가가 포함된 문학회는 서오릉으로 나들이를 간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여섯 명의 꼬마들과 마주친다. 어렵게 사는 문화동의 여섯 꼬마들과의 우연한 만남은 매달 1번씩 모이는 정기적인 모임으로 발전한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봉사활동을 하거나, 대학생과의 자매결연 모임 등 아이들은 드리워진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작가가 담낭절제 수술을 받았을 때 벼르던 나들이에서도 못싸간 달걀을 가지고 문병을 왔던 순수한 꼬마들. 1968년 7월 구속되기까지 이어진, 빈부노소를 배제한 인간 대 인간으로의 청구회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소박 하고도 진정한 기쁨을 느낄 줄 알았던 작가와 가난한 아이들과의 모임인 청구회는 정치적 목적이라는 억지스러운 추궁을 받는다.
모든 것이 억압된 단조로운 생활의 반복을 강요하는 수형생활 속에서도 자기 성찰의 나무를 심고 가꾼다. 매일 나눠주는 휴지 2칸에 작은 글씨로 빽빽이 적어나가는 서신들. 동생에게는 결과보다 노력의 과정을 중요시할 것을, 형님의 결혼에 다만 엽서 한 장으로 축하를 전하며 아픈 마음을 달래고, 부모와 형제의 염려의 존재가 되기보다는 대화의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단히 책을 읽는다. 대학, 중용, 맹자, 순자, 한비자 등 동양고전을 정독하고 , 독서보다는 사색에 더 맘을 두고 지식을 넓히는 공부보다는 생각을 높이는 노력에 더 힘쓰는(76쪽) 모습은 꼿꼿하고 의연한 대숲을 연상케 한다. 5권 이상의 책을 소지할 수 없어 한 권으로 묶어서 읽고 또 읽고 사색하는 과정을 통해 문리를 터득하길 노력한다. 붓글씨를 쓰며 글씨의 기교보다는 관조의 경지를 담고자 한다. 글자의 획과 획의 관계에서 대소, 강약, 태세, 지속, 농담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양보하며 실수와 결함을 감싸주는 (101쪽)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계를 성찰한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소로우의 월든을 읽으며 필요 이상의 물건들과 함께 함을 알았다. 많은 것을 가질 수 없는 무기수의 수형생활에 버릴 게 뭐가 있을까. 섭갹담등(躡屩擔簦)-짚신 한 켤레와 우산 한 자루-언제 어디로든 거뜬히 떠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지품만을 남기기로(105쪽)한다. 버린다는 것은 상추를 솎아내는, 더 큰 것을 키우는 손길(105쪽)
임을 알고 지식의 사유욕조차 버린다. 1885년 한 인디언이 미국 정부에 보낸 편지를 읽는 저자. "당신(백인)들은 어떻게 하늘을, 땅의 체온을 매매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땅을 팔지 않겠다면 당신들은 총을 가지고 올 것입니 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물은 기실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갓난아기가 엄마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사랑하듯 우리는 땅을 사랑합니다."(132쪽)
자연을 미개하고 개척해야 할 존재로 여기고, 생산하고 소비할수록 궁핍을 느끼게 하는 문명을 비판한다. 고작 백 년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고 매매하는 서구의 사고방식을 보편적인 원리로 받아들이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쇼펜하우어가 말한 들이킬수록 갈증을 느끼는 바닷물과 같은 자본의 소유욕에 길들여진 것은 아닌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연대 속에 개인의 덕성을 완성하기를, 슬픔도 사람을 키우기에 어디서든 배움을 멈추지 않기를, 책에서 얻은 지식이 실천과 유리된 관념의 그림자(139쪽)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수형생활로 관념화되어 가는 독서를 염려하고 타인의 경험이라는 독서를 병행한다. 좋은 사람과 좋은 글씨의 필연성을 깨닫고 인격의 도야를 위해 힘쓴다.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 돌아 낮은 곳으로 흐르는 노자의 "상선약수", 그릇의 속이 빔으로 쓰임이 되는 "당무유용"을 말과 글, 그리고 삶으로 실천한 시대의 어른,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세상으로부터 한 줌의 햇볕을 보내 주던 창문 턱에서 풀씨 한 알이 싹을 틔운다. 강인한 생명력이 선물한 작은 기쁨은 큰 슬픔과 좌절을 이길 힘을 준다.
열다섯 해는 아무리 큰 상처라도 아물기에 충분한 세월입니다. 그러나 그 긴 세월 동안을 시종 자신의 상처 하나 다스리기에 급급하였다면, 그것은 과거 쪽에 너무 많은 것을 할애함으로써 야기된 거대한 상실임이 분명합니다.(215쪽)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정치적 양심수로서 그 긴 수형생활을 하면서도 어떻게 분노와 좌절을 자아성찰로 승화시킬 수 있었을까. 타인의 오류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유연함과 후덕함은 감화를 통한 변화를 이끌어 낸다. 가르치며 훈계하지 않고 몸소 보여주는 넉넉한 그릇. 산봉우리의 낙랑장송이기보다 숲 속의 나무가 되기를, 한 알의 물방울이기보다 바다를 선택하며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함께 햇빛을 나누며,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음(219쪽)을 강조한다. 관계와 연대를 삶 속에서 실천한다.
사랑하기보다 사랑받으려 하고 이해하기보다 이해받으려 하는 것은 마음의 가난에 연유한다는 것, 남에게 자기를 설명하려는 충동은 자신감의 결여에서 나온다는 깨달음은 아프게 읽힌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더해지는 시간들. 스무 해의 봄여름가을겨울과 연로해지는 작가 어머니에 대한 소회를 읽으며 눈물지었다. 20년이란 시간을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 큰 응어리를 안긴 채 속절없이 부모의 나이 듦을 봐야 했던 그 마음이 어땠을까. 읽고 또 읽어도 그 마음에 가닿지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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