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덕후의 책이야기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의 독서법, 이동진」

by 라벤더

이사 다닐 때마다 문제는 책이었다. 이삿짐센터 아저씨의 볼멘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처분했는데도 여전히 책장을 어디에 두느냐로 고민이었다.


고양이빌딩에 20만 권을 갖고 있는 다치바나 다카시, 3만여 권과 함께하는 시인 장석주, 2중 책꽂이 8~9단의 책장에 17000여 권을 소장한 이동진 작가. 세상에 읽을 책은 왜 이리 많고 많은지, 책욕심은 끝도 없고, 읽을수록 더 읽고 싶어진다. 스스로 샀다고 믿기지 않는 책, 중고 서점에서도 안 받아주는 책, 있는 줄 모르고 산 책. 책과의 인연도 인생과 닮았다.


책장에서 묵은지가 될뻔하다 구출된 책도 있다. 병렬독서와 꼬리물기독서로 엮여 나온 책은 뒤늦게 인생의 책이 된다. 한번 읽고 다시 읽으면, 문체에 익숙해지고 처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종이책의 질감을 느끼며 연필로 밑줄 긋고 여백에 생각을 남기는 독서를 좋아하는데, 우연히 전자책을 접했다. 급격히 나빠진 눈 때문에 읽고 듣기를 병행하는데 꽤 괜찮다.


말이라는 것은 자꾸 쓰다 보면, 특히 좋은 말일수록 먼지가 내려앉게 되어 있어요. 내가 정말 곡진하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 말은 워낙 감정적으로 강력하고도 유용한 말이기 때문에 상업적 이유를 포함해서 지나치게 과용되고 있죠. 심지어 114 전화안내원조차 한때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시작하고는 했으니까요. 그러면 그 말을 진짜로 하고 싶어도 멈칫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문학은 오랜 세월 말에 쌓여 있는 수많은 먼지 같은 것을 털어서 그 말의 고유한 의미나 다른 의미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 자체이면서 표현 방식이기도 한 언어를 가장 예민하게 다루는 문학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봐요.(37쪽)


문학은 말 위에 켜켜이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 고유한 의미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 "언어를 가장 예민하게 다루는 문학"이라는데 공감한다. 벼린 감성이 나와 타인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갖게 한다면 문학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욕조에서 책 보기를 좋아하는 이동진 작가. 목까지 담그고 적게는 2시간 많게는 7~8시간을 읽는단다. 강연에서 상상하지 말라며 우스개 소리를 하던데, 물속에서 읽는 노하우가 궁금.


침대에서의 독서를 즐기는 정혜윤 PD. "침대와 책"은 그래서 반가웠다. 이동진 작가에게 욕조가 엄마 자궁 속에 들어온 듯 편안함을 준다면 나는 침대가 그렇다. 그는 정신이 명료하지 않은 침대독서를 자제한다지만, 읽고 사유하며 나만의 세계에 접속된 시간이 좋다.


책표지에 얼굴이 있는 책은 안 산다는 그가 자신의 캐리커쳐를 표지에 그려놨다. 물론 본인이 그린 건 아니겠지만.... 책을 읽는데 무슨 기법이 있을까. 그저 읽고 싶은 대로 읽는 게 독서 아닐까.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해왔던 책덕후의 책이야기라고 하는 게 맞겠다. 외로움과 고통, 호기심을 통과한 수많은 책에 관한 이야기. 영화평론가지만 영화에 대한 책보다는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책을 즐긴다. 풍부한 감성이 묻어나는 영화의 깊이 있는 해석은 그래서 가능하리라.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영화평을 담은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 인상 깊었던 이유가 있었다.


한계효용 법칙을 무화시키는 독서습관,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는 책과 교감하는 시간은 소중하다. 호기심이 포기로 이어지던 내가 질리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시 공간 속에서 매번 판단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이 실존적으로 세상을 향해서 갑옷을 두르는 게 습관인 거예요. 그런 면에서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게 최상의 행복 기술인데 그 습관 중에 독서가 있다면 너무 괜찮은 거죠.(179쪽) 작가에게 빨간 안경은 세상을 향해 두르는 갑옷 이란다. 작년부터 화장을 하지 않는다. 민낯이 자신 있어서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내면의 갑옷에 집중 하고 싶을 뿐.


밑줄 긋고 여백에 생각의 가지를 적고, 읽는 과정을 즐기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공감할 만한 습관이다. 글쓴이의 생각이 응집된 '서문'과 설계도 같은 '차례', 작가의 힘이 달리는 2/3 지점이 좋으면 정말 좋은 책이라는 책구입의 노하우도 볼 수 있다. 뒤편에 500여 권의 추천 책리스트가 있다. 한 권의 책에서 고구마줄기처럼 딸려 나오는 책들. 남에게 좋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나를 흔들어 깨울 책을 어디서 만날지 모른다. 설렘으로 책리스트를 더하고 책을 고른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라는 부제처럼 그렇게 책들도 내게 왔다. 또 어떤 책들이 내게 올까?


세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빠르게 완료하지 못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 걸리는 시간 자체가 그 핵심입니다. 책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책과의 만남, 그 글을 쓴 저자와의 소통, 또 책을 읽는 나 자신과의 대화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 시간을 아까워하며
줄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번 무엇을 위해서 책을 읽는가 생각해 봅니다. 독서 행위의 목적은 결국 그 책을 읽는 바로 그 시간을 위한 것 아닐까요. 그 책을 다 읽고 난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독서를 할 때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책을 읽고 있는 그 긴 시간인 것입니다.(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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