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전화벨 소리

1. 엄마와 나 (~2020)

by 복사꽃향기


어느 날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첫 목소리에 전율이 일었다. 엄마에게 큰일이 있음을 직감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야야, 나 좀 살려도! 너희 아버지 하고 더 이상은 같이 못 살겠다 내 죽을 것만 같다." 하시는데 엄마 목소리가 여느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느낌이 전해지는 목소리에 너무 놀라고 말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 예감을 하고 있었던 터라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알았다."라고 하고는 곧바로 가족들에게 엄마의 상황을 알렸다.


부산에 사는 둘째 언니가 촌음을 다투며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다툼이 끊이질 않았던 부모님의 분쟁 조율사는 둘째 언니였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에게는 본인의 잘못만을 지적하는 모진 딸이 되어 있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아버지였지만 그 아버지로 인해 가슴 아파하는 딸의 모습은 전혀 보질 못하셨다. 이번에도 똑 부러지는 둘째 언니가 사건 발단의 조율에 나섰다. 분쟁의 시작과 마무리까지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와 오랜 실랑이 끝에 결국 아버지가 폭발해서 본인 입으로 엄마와 도저히 같이 못살겠다며 집을 나가겠다고 얘기하시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고집이 너무 강해 어떤 방법으로도 통하지 않았고 엄마와 같이 있으면 항상 문제가 발생했기에 이젠 따로 지내시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아무리 아버지에게 이성적인 행동을 간절히 바라왔지만 대화로 소통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면 엄마와 따로 사시게 하는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스스로 나가겠다고 하셨고 언니가 아버지에게 약속까지 받아냈다. 아버지의 조건에 맞는 곳을 서둘러 찾기 시작했다. 아버지 마음이 바뀌기 전에.


연세가 89세이시며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고 특별한 병도 없어 최소의 입소비만 들어가는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어 걱정이 되었다. 한시가 급했다. 엄마를 살려야 하는 기로에 선 상황이라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아버지가 계실만한 곳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셔와야겠다는 최종 방법까지 만들어 두고 있었다. 엄마에게 의논하자 우리 집에는 절대 오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사위 보기 부끄러워 안된다고 하셨다. 이 상황에서도 사위 눈치 보는 엄마에게 순간 화가 났다.


“엄마, 사위는 그런 생각 안 한다. 사위도 자식인데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계시면 된다. 나하고 많은 시간 보내고 나는 엄마가 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라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마음은 너무 고맙지만 “차라리 고통스러워도 집에 있는 게 낫지, 자식집에는 도저히 못 가겠다.”라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더 절박한 마음으로 찾아보다 불현듯 친정으로 오가는 길목에 요양병원이 하나 있었던 기억이 났다. 바로 전화로 의논을 했고 모셔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집과 멀지 않아 아버지를 자주 보러 갈 수 있는 적당한 거리에 있었고, 입소비용도 우리가 생각하는 선이었으며 시골이지만 교통도 좋았고 자연과 어우러져 생활하기도 좋은 환경인 것 같아 가족들 모두와 의논해 아버지를 그곳으로 모셔다 드렸다.


본인 입으로 나가겠다고 하셨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라 내내 못마땅한 표정만 짓고 계셨다. 섭섭한 마음에 얼굴도 쳐다보지도 않고 부모를 떼어놓는다고 억척을 부리시며 자식들을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하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보다는 더욱 더 엄마와 함께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간호 선생님들께 우리 아버지 잘 부탁드린다고 몇 번이나 인사하고 나오는 우리 가족들은 죄인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가족들에게 이런 고통을 겪게 하시는지 그 나이에도 자존심을 놓는 게 그토록 어려운 것인지 고집을 내려놓지 못해 왜 자식들에게 버림받도록 행동하는지 딱하기만 했다.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한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혹시나 아버지가 집에 와서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쌓여 방문을 잠근 채 지내셨다.


우리 아버지는 보통분이 아니셨다. 항상 인상을 쓰고 있었고 잔소리를 했으며 술에 만취해 있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쁜 날이면 집어던지고 부수고 폭력까지 행사했다. 그런 아버지를 아버지 형제분들조차 아무도 못 말렸다. 완전 고집 불통이었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식구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매사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루는 엄마가 도저히 못 견뎌 가까이 사시는 큰아버지와 친척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버지가 막내다 보니 형제들과는 나이차이가 많이 났다. 큰고모의 아들, 엄마에게는 시누이의 아들이라 호칭이 생질이었고 생질 입장에서는 아버지 엄마가 외삼촌, 외숙모가 되었다. 바로 위 큰아버지만 빼고 다들 조카뻘이었지만 아버지 보다 몇 살씩 나이가 많으셨다. 천방지축 날뛰는 불같은 성격을 좀 잡아보겠다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 집에 모두 모이셨다.


엄마는 그때 부끄럽다는 생각보다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고 했다. 그 심정 이해하고도 남는다. '누군가의 도움이 얼마나 절실했을까' 하는 마음이 지금도 파도처럼 밀려든다. 그렇게 모인 가족들이 아버지를 가운데 앉혀놓고 중재에 나섰다. 좀 자제하고 착한 엄마를 너무 괴롭히지 말라고 다들 한 마디씩 하자 참지 못한 아버지는 나이 많은 조카들 앞에서 또 폭발해 버렸다. 화가 날대로 난 아버지는 앞에 놓인 술상을 들고는 인정사정없이 천장으로 후려쳐 버렸다. 그 바람에 집이 난장판이 되었다. 술이 가득 들어 있던 주전자가 천장을 향해 호수 줄 같은 술을 콸콸 뿜으며 춤추듯 빙빙 돌며 날아가고 그 옆에 안주로 대기하고 있던 시뻘건 묵은 김치는 사방팔방 술이 골고루 뿌려진 벽지 위로, 천장 위로 날아가 그 위에 덧칠을 해댔다. 대화하던 가족들 얼굴에도 옷에도 아버지 본인에게도 사람 꼴이 아니었다. 앞에 보이는 재떨이, 라디오 등등 보이는 대로 다 집어던져 버렸다. 성격 고치려다 더 발악하게 만드는 것 같아 포기하고 돌아가자 우리들은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아버지의 다음 행동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밖에서 겁을 먹은 채 어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아버지의 격양된 고함소리와 함께 집기 부서지는 소리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현실감을 절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는 불안해서 절절 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분이 덜 풀려 가족들에게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는 폭력을 써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선 어찌 될지도 몰랐다. 아버지한테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했다. 아버지를 붙잡고 정신 차리라고 물리적인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자식들이 여러 명이 달려드니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어린 우리들에게는 이런 하루하루가 너무 벅찬 나날들이었다. 그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자식들한테는 손찌검, 욕 한번 하지 않았고 아버지만의 방식으로 애정을 보여주셨지만 자식들 중 어느 누구도 아버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모질고 무서웠으며 다정한 구석이라곤 없는 분이었다


참지 않고 서슴지 않았던 행동들이 결국 자신을 옭아매는 줄이 되어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스스로 늪으로 끌고 갔음을 몰랐다.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나가 계셔도 마음속에는 가족들에게 쫓겨났다는 억울함에 수시로 전화했고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주문을 했으며 여기저기 아프다는 핑계로 엄마를 오게끔 만들었다. 엄마는 강한 사람이었지만 모진 사람은 아니었다. 집을 나가 지내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런 상황까지 만든 본인의 아집과 고집에 불쌍히 여기며 조금은 안쓰러워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셨다. 그러나 너무 잦은 요구사항에 엄마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어떻게든 집에 다시 들어오려고 몇 개월 동안 별 방법을 다 써봐도 엄마가 꿈쩍도 하지 않자 아버지도 그사이 조금은 환경에 적응을 하셨고 또 서로 얼굴을 안 보니 화가 나지 않는지 마음이 안정되어 갔다. 전화로 엄마 걱정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두 분은 만나지 말아야 할 인연이었다.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시는 동안 우리 가족들에게 평온한 시간들이 찾아왔다. 처음으로 누려보는 평화로움이었다. 아버지는 마음을 비우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식한테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자주 아버지를 보러 갔다. 지금껏 엄마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우리들은 부모 걱정시키지 않는 마음 따뜻한 착한 자식들이 되어주었다. 아마도 아버지로 인해 어두워진 우리 집을 엄마의 강하고 밝은 에너지로 환하게 밝혀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버지와 별거 아닌 별거를 하고부터 심신이 안정이 되었던 엄마는 자식들에게 “그때 살려줘서 너무 고맙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위해 참으며 늘 “괜찮다. 괜찮다.”라고 한 말들을 그대로 믿은 우리의 무심함 탓에 너무 늦게 알아드린 것 같아 마음이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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