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의 환갑잔치

by 복사꽃향기


올해는 남편이 환갑을 맞이하는 해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몇 년 전부터 가족 여행을 해외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을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무슨 인연인지 엄마와 남편은 생일이 이틀 차이로 남편이 이틀 빠르다. 그래서 남편생일을 간단하게 하고 항상 친정엄마 생신상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의 특별한 주문이 있었다.

집을 짓는데 일등공신인 막내사위의 생일을 챙겨주고 싶다고 하시며 본인 생일을 챙기지 말고 사위를 위한 생일상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남편은 사양했지만 엄마는 너무도 고마워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가족모두 엄마와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기에 언니들과 상의해 예정에 없던 특별한 잔치 준비를 했다.


따사로운 햇살과 가족들의 온기로 가득 찬 그리고 즐거운 웃음이 흘러넘치던 10월의 어느 날 아침, 엄마가 평생 꿈에 그리던 엄마의 집에서 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 남편의 환갑잔치를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도 한 달 전부터 파티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하고 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파티 장소가 바뀌어 외할머니를 위한 준비도 하느라 좀 바빴다고 웃으며 넋두리한다.


행사 전날부터 가족이 다 모이니 잔치집같이 시끌벅적했다. 엄마는 너무 기분이 좋아 함박웃음을 지으며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 어깨춤을 추고 다니셨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니 이런 게 진정한 효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회사에서 광고를 담당하고 있는 딸의 진가는 그날 드러났다. 테마마다 의미를 담아 오래도록 가족들이 추억할 만한 분위기를 만들어 집안 전체를 꾸몄다.

부산스럽게 어른들이 특별한 잔치상을 준비할 동안 우리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짜가며 준비를 시작했다.


벽에는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해 온 ‘인생의 60부터’라는 대형글귀가 적인 플래카드가 걸리고 그에 걸맞게 가장자리에는 금색과 흰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선들로 아빠인생에 꽃길만 걷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껏 담아 예쁜 꽃 모양으로 행사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너무 예뻤다.


생일아침 오전 9시쯤 우리 가족들의 특별한 행사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행사 식순을 미리 짜왔다. 절차와 순서가 있는 제대로 된 행사가 되었다.

먼저 환갑을 맞이한 남편을 위한 축하인사로 시작했다. 축하 꽃다발과 함께 가족모두의 짧은 덕담을 주고받은 뒤 선물을 전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벤트 선물로 자주 등장하는 앞에는 ‘아빠 하고 싶은 거 다 해’ 뒤에는 품위 유지비‘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머니건을 아빠손에 쥐어주었다.

머니건을 처음 본 남편은 그저 싱글벙글 거리며 “이게 뭐꼬?”하면서 장난감 총을 아무 데나 쏘아 됐다.

그러자 그 속에서 보물상자가 열린 것 마냥 오만 원짜리, 만 원짜리 돈이 뒤섞여 줄줄이 뿜어져 나온 지폐는 멈출 줄을 모르고 온 사방으로 흩날렸다. 가족들은 너무 신기해하며 돈을 주우러 이리저리 좁은거실 사이로 엉덩이 부딪혀 가며 찾았다.


그 와중에 재미를 더해준다며 가족들이 주운돈을 호주머니에 넣는 시늉을 하자 아이들이 아빠 용돈이니쓰고 싶은데 사용하라며 오백만 원이니 잘 챙겨 가시라고 한다. 금액에 또 한 번 놀랬다.


그렇게 아빠를 위한 행사 몇 가지 더하고 난 뒤 다음은 외할머니 차례였다. 그런데 엄마가 안 계신다. 가족들이 모두 이벤트로 즐거워하던 그 찰나에 엄마는 큰언니의 손목을 잡고 사라지셨다. 그리고는 그 짧은 시간에 얼굴을 꽃같이 곱게 단장을 하고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나셨다.

그 모습이 너무 고왔다.


급하게 그린 탓에 눈썹이 짝짝이가 된 줄도 모르고 다음 차례의 주인공인걸 인지하신 엄마는 행사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타났다. 엄마의 순발력에 모두 다 감탄을 했다. 사진에 담길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꽃단장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사진 속의 엄마는 항상 고운 모습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평생 진흙 속에 살아온 자신의 삶이 모습에서 보이지 않길 원했을까? 사진 속의 모습만은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기를 바랐던 것일까? 우리 엄마는 억 센 일과 거친 삶을 살았지만 몸과 마음이 참으로 고운 사람이었다.

늘 빛바래지 않은 젊은 시절의 여인처럼. 저절로 내 삶의 모습을 뒤돌아 보게하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잠깐이지만 엄마는 내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얀 크림으로 감싼 케이크 위에 분홍, 노란 , 보라꽃이 만발한 상 한가운데가 엄마를 위한 자리였다. 지금 엄마의 모습과 너무 잘 어울렸다.


엄마는 알고 벌써 자리 잡으신다. 그리고 한마디 하신다. “사진 잘 찍어래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는 정신없이 웃고 떠드느라 사진 찍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알아서 열심히 동영상을 찍어놓긴 했지만. 역시 우리 엄마 한수 위다.

그렇게 엄마를 위한 2차 행사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행사보다 사진 찍어 추억할 수 있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는것 같았다. 분홍색 블라우스에 아이보리색 바지를 입은 뽀얀 얼굴에 미소 짓고 있는 우리 엄마의 모습은 마치 천사 같았다. 곱디고운 모습을 여러 장 찍고는 얼른 밥 먹자며 양팔을 펼쳐 다들 앉으라며 위아래로 올리고 내리는 모습이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보였다.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이 준비해 온 떡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고 난 후 케이크에 꽂혀있는 글씨를 당겨 보라고 했다. 혹시나 케이크가 망가질까 당기지를 못했다. 엄마손을 잡고 같이 거들며 조심스레 당겼다. 그 케이크 속에서 돈이 줄줄이 딸려 나오자 '이게 뭔 일인가' 싶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앉아서 조심스럽게 빼던 엄마는 계속 나오는 돈줄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돈줄을 꼭 잡고는 얼굴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과 감동이 뒤섞인 표정으로 보일락 말락 한 미소를 머금은 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한 손엔 돈줄을, 한 손은 바닥을 짚고 일어서더니 계속 당겨도 끊어지지 않고 나오자 “하이고 뭐 이래 많노!”하시며 너무 좋아라 하신다.


우리는 옆에서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에 박장대소하며 엄마의 첫 경험에 열심히 흥을 돋워 주었다. 이런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맞춤형 이벤트가 되었다. 준비는 손자손녀가 했지만 그 순간만은 자식인 우리가 효도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우리 아이들이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부터 외갓집에 자주 가게 했다. 가족도 자주 봐야 정이든 다고 가끔이라도 찾아가는 노력도 해야 관심도 생기는 법이다. 살다 보면 가족이 버팀목이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만 대하던 외할머니를 편하게 생각하며 자주 외할머니의 근황을 묻고 소소한 선물이라도 자주 챙겨 드리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고맙고 기특했다. 한 가지를 부탁하면 두 가지를 해주려고 노력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감동을 받은 적도 많다. 멀리서 생활하면서도 외할머니가 외로우실 것 같다며 자주 찾아뵈었다.


외할머니를 자주 보다 보니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이런 이벤트를 분명 너무 좋아하실 것 같아 준비하면서도 살짝 기대되기도 했었단다. 완전 대성공이다. 행사가 끝난 후 식사를 하면서 “TV에서 가끔 하는 걸 보며 그저 남의 일이려니 생각했는데 나도 이런 걸 다 해보네. 어떻게 할머니한테 해줄 생각을 했느냐” 라며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고마워했다. 그때 엄마의 모습만으로도 ’너무 좋아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표현을 하셔서 더 감동을 받았다. 우리 가족들은 그렇게 하루동안 즐거운 잔치분위기를 이어갔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는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며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온 것이다. 마음의 부담도 누군가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야 그 시간이 온 것이다. 이런 좋은 날을 맞이하고 보니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좋은 행복을 모르고 가신 아버지의 삶을 안쓰러워하며 우리 가족들은 또 한 번 엄마의 한마디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 깊은 수렁을 빠져나와 이제 따뜻한 햇살 속에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계신 우리 엄마는 인간승리자임을 자축하며 항상 건강하시기만을 기도했다.

엄마의 시골전원주택에서 즐겁고 의미 있는 1차 행사는 멋지게 막을 내리고 2차 행사로 해외로 잡았던 우리 가족여행은 코로나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친정가족들에게 두둑한 용돈을 받아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엄마를 모시고 가려고 했지만 걷는 것이 불편하다며 사양하셨다.


우리 딸들은 엄마를 모시고 평생 여행 한번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엄마가 원하는 것을 다 해드리려고 노력한다. 나는 요즈음 엄마의 얼굴만 보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있냐"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런 내게 엄마는 한 번도 가고 싶다 하고 싶다고 하지 않으신다. 그런 엄마가 더 애달프다.

가족모두가 즐겁고 행복했던 생일잔치는 엄마와의 마지막 잔치가 되었다.


참 인생은 알 수 없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이 있다고 내일도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인생은 긴 듯해도 살아보면 참으로 짧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때그때 바로 하는 것이 후회 없이 사는 비결인듯하다. 지금 못하면 다음에도 못하는걸 너무나 많이 느끼고 봐 왔기에 생각이 들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다. 어느 날 문득 엄마에게 해드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한다. 그러려고 노력을 했다.


좋은 행동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 노력하면 습관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족함이 많은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바꾸고 실천하려고 하다 보니 가족들로부터 좋은 모습으로 많이 변했다는 얘기를 요즈음은 좀 듣는 것 같다.

항상 마음속에 사람다운 도리에 기준을 두고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의 자세가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해져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았나 싶다.


인생속도가 나이속도란 말도 있다. 우리도 이렇게 빠른데 엄마의 속도는 얼마나 빠를까를 생각하니 부지런히 엄마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해드려야겠다는 조급함마저 든다.

부모자식 간에도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받은 은혜를 나이 들어 힘이 없을 때 돌보아 드리는 게 당연한 일이며 칭찬받을 일도 대단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돌고 돌듯 받았다면 때가 되어 돌려드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나에게는 오히려 기쁨이었다. 이런 나의 생각에 일조를 해준 우리 아이들이 더 고마울 뿐이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에게 그 이상 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엄마에게 줄 수 있는 애정의 전부를 아낌없이 쏟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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