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물려받은 나의 재능

by 복사꽃향기


엄마는 평생을 살아도 내가 뭘 잘하는지 뭘 하며 살고 있는지 잘 몰랐다.

늘 삶이 고달픈 엄마에게 나는 내 얘기를 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엄마는 늘 아버지의 지독한 의처증과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주사를 받아내느라 자식들이 잘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물어본 적도 없었으며 알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가끔 자식들이 집에 와서 하소연이랍시고 하면 고작 들어주고 걱정해 주는 정도였다. 엄마가 바라본 자식들의 결혼생활은 자신보다 더한 사람은 없었으니 그 정도는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며 일축해 버릴 때가 많았다. 아니면 관심을 가져줄 수 없어 그저 잘살고 있으려니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엄마에게 나의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을 얘기한다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살면서 조금의 힘듦도 못 참아 불평하는 철부지 딸로 여기는 것 같아 아무리 힘들어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너무 바쁘게 살아 자식들의 고민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항상 받곤 했다. 그래서 나의 힘듦을 토로해 본들 알아줄 것 같지도 않았고 그 반응에 내 마음만 더 서글픈 생각이 들어 엄마가 물어오기 전까지는 먼저 말하지 않았다. 집에 오면 항상 그동안 아버지에 대한 쌓인 사건사고들을 들어주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언제나 엄마의 불만만 듣다 보니 인생이란 게 너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왜 저렇게 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답답함만 자꾸 들었다. 늘 그런 우울한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너무 많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매사에 따지고 들고 누가 나를 비웃는 눈치라도 보이면 나도 모르게 날이 서 대립하곤 했다. 그러한 나의 행동 때문에 긍정적인 생각이 찾아들 수 없는 정신상태를 나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점점 내가 아닌 내가 되어갔다.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며 매사 배려심 많던 내가 나쁜 환경의 지배를 받아 자꾸만 이성적이지 못한 성격으로 나를 몰고 갔다. 늘 부정적이고 심각하고 건수만 생기면 시비조로 말을 던지고 그런 내 모습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나의 입에서 나간 배려 없는 말투 때문에 상대방의 반응이 감정적으로 대한다는 것조차 모를 만큼 나의 무너진 자존감은 밑바닥을 쳤다.


나 자신이 무서웠다. 이러다 정말 심한 우울증에 걸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모든 게 한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젖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 자신을 보았다. 내가 없었다.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래야만 보편적 판단을 하던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부터 정신을 차리고 나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부터 시작해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무엇일까 , 무엇을 할 때 가장 재미있어했으며 또 지치지 않고 오래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림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게 참 쉬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가진 재능이 그림이 구나 싶어 노력을 해서라도 내가 가진 재능을 살려야겠다’ 생각했다. 이때부터 내 삶의 목표 하나가 정해졌다. 그리고 무작정 실전에 돌입했다. 알아보니 문화센터에서 포크아트라는 이름으로 그림 강좌가 있어 등록을 하고 그림 배우기를 시작했다. 최종의 바람은 강사가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 자신에 대한 꿈을 이뤄가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더없는 보람을 안겨주었다. 3년 동안 열심히 배워 전시회도 여러 번 하고 선생님과 동료들에게도 인정을 받았지만 강사가 되기엔 아직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 주저하고 있을 때 강사를 하고 있는 지인들이 수업을 하면서 배움을 더 이어가라는 조언이 있었다. 그래서 호기롭게 홈스쿨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포크아트강사가 되었고 수업을 하면서 전문자격증도 취득했다. 나에게 너무 의미 있고 보람된 시간들이었다. 완전히 무너졌던 자존감이 조금씩 회복되자 그때 느끼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나에게 좋은 것만 물려주었다는 것을. 아버지의 기술적 재능과 엄마의 예술적 감각모두를!


엄마는 평상시에 나에 대한 기대치가 없었다. 그저 무탈하게 살아주는 것만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런 존재였다. 아이 둘을 나아 가정을 잘 챙기며 살아가는 보편적 딸이었지만 엄마는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엄마도 여자이면서 착한 아내로서 엄마로서 가정을 잘 챙기는 여자로 살기를 바랐고 또 강조하셨다. 그런 삶이 올바른 삶인 양. 그러다 잘하는 한 가지를 발견하면 엄마는 깜짝 놀랐다. “네가 이런 것도 할 줄 아느냐”하시며 신기해하셨다.


가끔 엄마를 보러 올 때면 고장 난 물건이 있어 수리를 해야 하는데 기사가 빨리 오지 않는다고 염려하곤 하셨다. 그때마다 엄마가 불편할 것임을 생각해 아무 말 없이 고쳐놓곤 했다. 처음으로 엄마에게서 나를 향한 믿음의 눈빛을 보았다. 그때부터 엄마의 만물수리공이 되었다. 이제는 아예 수리할 것을 죽 적어놓고 나를 기다린다. 속 시원이 다 해결한다. 점점 무엇을 해도 믿을 수 있는 딸이 되어갔다. 내가 기술을 터득하게 된 이유는 그림 수업을 하면서 수강생의 요구조건을 꼼꼼히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점점 기술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또 그 원리를 알게 되었다. 아마도 관심을 가지니 이해를 하게 된 것 같다. 그 이후부터 엄마는 고칠 것이 있으면 내가 와서 다 고친다고 다른 사람이 고쳐준다고 해도 괜찮다며 우리 딸이 더 잘한다 소소한 자랑도 곁들이며 사양한단다. 아이고~~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미안함과 고마움이 썩인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우시다.


아마 우리 엄마는 평생 귀염둥이로 남을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계시면서 혹시나 적적해하지 않을까 싶어 서점에서 색칠공부책 몇 권을 골라 다양하게 색감을 표현할 수 있도록 개수가 많은 색연필도 함께 사다 드렸다. 한 가지에 몰입을 하는 성격이라 하루에 한두 장씩만 하라고 했다. 나이 들어 한 자 세로 오래 있는 것은 몸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었다. 심심할 때만 하라고 했었는데 며칠 뒤 집에 갔더니 색칠공부책이 전부 다 칠해져 있다.

앞장에는 색칠이 되어 있는 그림이 있고 뒷장에는 보고 따라 색칠하는 거였다. 대부분 엄마마음 가는 대로 색칠을 해놨는데 그 색감이 너무 곱고 몽환적이다.


그때 또 알게 되었다. 내가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을, 그래서 색을 다루는 사람이 된 것을.


엄마는 외출할 때도 옷을 대충 입지 않았다. 본인한테 잘 맞는 색감의 옷을 위아래 깔 맞춤해서 입고 외출에 나선다. 그래서 하루는 의구심이 생겨 물어보았다. “색을 맞춰 옷을 입느냐”라고 했더니 아니란다. 그냥 그렇게 입고 싶어 입었을 뿐이란다. 타고난 게 맞다.


엄마는 장점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무엇이든 해보는 것을 좋아하고 책을 보면 그 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는다. 팔순의 할머니가.

일상적인 이야기도 너무 재미나게 이야기를 잘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곤 한다.

이야기꾼 엄마도 같이 눈물 콧물 흘려가며 박장대소하며 분위기에 몰입한다. 그래서 딸들이 모이면 온갖 수다에 동네가 떠나가도록 시끄럽다. 우리 가족은 엄마 닮아 에너지가 넘치는 편이다. 엄마가 그런 시간을 만들어 준다.


신은 다 주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맞는 말인가 싶다. 그 중심에 늘 아버지가 있었고 우리 가족들에게 행복한 시간은 많았지만 집으로 돌아올 땐 항상 슬픈 얼굴로 와야 했다. 아버지가 늘 사건사고를 만들다 보니 엄마도 기분 좋을 리 없었고 벙어리 냉가슴은 늘 시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늘 화병을 달고 살았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다 보니 우울증이 생기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 엄마의 성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의 낮은 자존감은 수도 없이 드러나는 모순된 반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도 좋은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남들보다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다.


무엇이든 직접 만들어 사용했고 고치는 것도 잘하셨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집도 아버지가 손수 시멘트로 벽돌 하나하나 찍어 한단 한단 쌓아 올려 직접 다 지으셨다. 그렇게 부지런하고 일머리도 좋은 편이었다.

아버지를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그런 부분들에 있어 아버지를 많이 닮은 것 같다. 젊은 시절에 나는 가족들 중에 가장 평범하고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살다 보니 그 삶 속에 받은 많은 재능들을 알게 되었고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부모님께 받은 재능들을 키워온 노력 때문인지 점점 더 성장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는 것 같다. 다만 찾지를 못하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유도 한몫하는 것 같다. 찾으려고 하면 분명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믿었고 노력했고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내 모습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재능을 찾아 노력으로 발전해 온 나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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