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고추하우스

by 복사꽃향기

첫째 언니는 시골에서 평생 하우스 농사를 지어왔다. 여러 품종을 거쳐 지금은 홍고추농사를 짓는다.

고추의 품종도 몇 해만에 한 번씩 바꾼다. 토양도 같은 품종으로 여러 해 농사를 지으면 병을 한다.

그래서 땅을 완전히 갈아엎거나 아니면 새로운 품종으로 갈아 심는다.


해서 두 해 전부터 홍고추를 키웠다.

그렇게 애써 키운 고추는 빠르면 3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수확을 한다.


수확을 하는 날은 바쁜 손을 보태기 위해 남편과 함께 언니하우스로 출근을 한다.

그런데 하우스 안은 수시로 온도조절을 해도 무척이나 더워 평상시에도 땀이 많은 나는 고추 수확을 위해 하우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땀으로 온몸을 치장한다.


한 번도 하우스일을 해본 경험이 없었으나 고생하는 언니의 짐을 들어주고자 호기롭게 덤비는 통에 시작도 하기 전부터 땀범벅인 나를 본 언니는 더위 먹을까 그때부터 노심초사다.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도 동생 고생시킨다 싶어 조금이라도 시원한 바람이 들어올까 덮어놓은 하우스 천장거적을 올렸다 내렸다 부산을 떨었고 그늘로 가라, 좀 쉬었다 해라, 물 마셔라 하는 통에 일에 진척이 없었다.

그런 엄마 같은 언니다.


시골에 내려와 터를 잡으면서 나름 한 가지 다짐한 게 있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나자 그때서야 동생을 위해 헌신한 마음 따뜻하고 여리기만 한 큰 언니가 보였다.


평생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 보니 성한 곳이 없는 몸이 되어 있는 언니를 부모님 대신으로 생각하며 딸 같은 마음으로 언니에게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동생들 키우느라 학교 한번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그래서 자신감마저 상실하고 살았던 그 언니에게 어린 동생들을 자식처럼 키워주었던 그 시간들의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보상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가슴에 십자가처럼 박였다.


언니는 딸이 없고 아들만 둘이 있다. 조카들도 언니에게 효자다.

하지만 대화에는 말할 수 있는 선과 이해할 수 있는 선이 있다. 속마음을 다 터놓을 수는 없다.


언니를 만날 때마다 나이 많은 동생은 애교를 부리며 효도하겠다고 너스레를 떨곤 한다.

그때마다 백합같이 곱고 맑은 언니는 행복한 표정으로 신나게 어깨춤으로 화답한다.

그렇게 나의 효도는 시작되었다.


농사일이 옆에서 볼 때는 참 쉬어 보였는데 막상 실전으로 들어가 보면 하나에서 열까지 다 배워야 한다.


고추 꽃 따주기, 순 치기, 처지는 가지 매달아 주기, 곰팡이 생긴 잎사귀 따주기, 붙어있는 가지 숨구멍 만들어 주기, 그리고 매달아 주는 끈 역시 묶는 방법이 따로 있었고, 묶을 때도 적당한 공간을 두고 묶어야 했다.


너무 묶으면 자랄 때 목이 졸리고 느슨하면 무게로 인해 쉽사리 풀리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손길을 요한다. 쉬운 게 없다. 언니는 일 년 농사인 고추나무가 어설픈 나의 손길에 혹시나 해를 입을까 노심초사했다.

작업자체가 까다로워 전문가인 언니로부터 세밀한 코치를 받은 후 테스트에서 합격을 받아야만 같이 거들수가 있었다.


'에이~~ 때려치워 버릴까? 그래도 농사꾼 딸의 자존심이 있지!'


될 때까지 한다는 각오로 제대로 하고있는지 계속 물으며 차근차근 배웠다. '내 일이다' 생각하고 들으니 얼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속도가 느려도 무엇이든 처음에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의다. 익숙해지면 속도는 붙게 되어 있다.

생각보다 고추농사는 굉장히 예민한 작물이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까다롭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시로 온도체크에 변하는 날씨에 환풍기를 열었다 닫았다 해야 했기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언니를 도우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다 보니 그래도 준배테랑은 되었다.

가끔은 언니보다 잘했다고 칭찬받을 때도 있었다.

30분 거리에 있는 언니하우스에 일주일에 2~3번은 가게 되었고, 수확하는 날은 나름의 운치도 있었다. 농막에 여럿이 둘러앉아 집밥처럼 식단을 준비해 오는 식당밥은 완전 꿀맛이었기 때문이다.

반찬가게 사장님의 센스로 계란 후라이는 사람수보다 한 개 더 덤으로 왔다.


형부는 기특한 어린 처제에게 귀한 계란 후라이를 양보한다.

얼씨구나 하며 얼른 게살스럽게 먹어버리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쳐 모두들 한바탕 웃는다.

남편은 수확한 고추를 수거해 가는 수거반으로 나는 고추 따는 아낙네로 언니와 평상시 나누지 못했던 사적인 감정들을 교류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도 누린다.

그리고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고생했다며 형부가 즐거운 나들이를 시켜준다.


전국을 자기 집처럼 누비고 다녔던 가이드 못지않은 형부는 여행을 좋아하는 처제를 위해 말만 하면 어디든 데려가 주신다.

그 덕분에 단조로울 수 있는 시골살이에서 호사를 누렸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움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언니가 하우스 일을 하다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지면서 지지대로 만들어 놓은 쇠에 심하게 부딪혀 손목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났다.

손목고정을 위해 철심을 넣는 수술하고 깁스를 해 한 손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일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마음이 여린 언니는 속이 상해 계속 울기만 했다.

"언니의 손발이 되어줄 테니 걱정 말라"라고 위로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언니 씻기기, 음식재료준비, 하우스일을 거들었다.

내 살림은 뒷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언니의 몸이 회복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하게 되자 그동안의 수발을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그 이후 모든 먹거리는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이젠 역으로 언니가 초보농사꾼에게 농사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알려주고 곁에서 도와준다.

조금씩 나이로 인생을 채우고 보니 어떻게 사는 게 지혜롭게 사는 것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채우는 삶이 아니라 비우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빠르게 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가야 한다는 것을.

열정이 아니라 나의 속도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아도 잘못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러면서 배움이라는 단어 하나만 얹어 가면 충분하다는 것을.



내가 하는 일에 언제나 옳다며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주고 격려해 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큰언니가 있음에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이제 또 새로운 3월이다.

새로 심은 고추나무가 듬직하기까지 하더니 벌써 수확이 시작되었다.

아무 날 호출이 오면 숨차게 달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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