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 좋은 아이 키우는 법
ㅡ구기운동 종목에 도전하기 ㅡ
두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늘 '오늘은 또 무엇으로 아이들의 생각을 키워줄까?' 하는 마음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생각이 머문 곳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들어가면 배우게 될 구기종목이었다. 놀이 삼아 미리 가르쳐 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남자아이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공을 차고 노는 축구는 본능적으로 잘하는 것 같다.
축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저 아이들과 골대 없는 빈차리를 향해 이리차고 저리차고 하며 같이 놀아주는 게 전부였지만 탁구나 배드민턴은 어느 정도의 기본스킬이 필요했다. 하지만 애써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자연스레 선생님의 전문적인 스킬을 체계적으로 배울 것이기에 집에서는 그저 공을 받아넘기는 놀이 정도로만 했다.
두 아이에게 배드민턴을 먼저 시켜 보았다. 셔틀콕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채로 받아내는 것은 좀 쉽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딸아이는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보니 생각만큼 공을 받지 못하고 헛손질이 반복되자 그만 포기를 해버렸다. 공부에는 집착이 강한데 운동은 영 잼뱅이다.
그런데 성인이 된 지금은 운동은 도맡아 하는 악바리가 되어 있다. 하루만 보, 필라테스, 헬스, 자전거 라이딩, 마라톤까지, 여행도 고생길을 찾아가는 남미에서 야영, 800킬로의 산티아고 순례길 악바리도 그런 악바리가 없다.
어릴 때는 여리여리하고 조심스럽기만 하던 아이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이런 고로 이런 성격의 아이는 억지로 시키면 안 된다.
내 경험상 억지로 시키면 나중에 해볼 것도 더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다음에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억지로 시키면 완벽주가 성격의 아이들은 잘 수긍하는 아이들에 비해 더 깊이 자존감이 낮아지고 다음에 기회가 왔을 때도 전의 실패로 인해 시도하지 않을 가망성이 많다.
시간을 두고 스스로 해 내겠다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학년이 올라가고 또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다 보면 더 재미를 느낄 수도 있기에 오히려 그 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은 탁구였다.
집에서는 전용 탁구대가 없기 때문에 다행히 식탁이 길어서 가운데 줄을 만들고 탁구 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 재미에 아들은 밤낮없이 탁구를 치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또 기약 없는 파트너가 되어야 했다.
아들은 가르쳐 주는 모든 놀이를 게임처럼 좋아하고 빠져들었다. 지겨워하지를 않았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엄마를 졸라 아파트 단지 앞 야외주차장에서 해가 지고 셔틀콕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매일 배드민턴을 치고 또 쳤다.
지금은 소소하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엔 그저 재미를 느끼도록만 유도할 뿐이다.
무척 개구쟁이였던 아들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놀이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개발새발 하던 운동신경이 점점 실력으로 다져지는 게 눈에 보였다.
소심한 우리 딸은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고 재미를 느낀 아들은 방과 후 탁구, 배드민턴, 축구 돌아가며 하는 행복한 하루 일과가 되어 버렸다.
아들의 열정에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라도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기특했다. 어떤 것이 주어져도 투정 없이 무엇이든 열심히 해 내는 성실함은 아마도 그때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결과는 나중에 나오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교육방식이 그나마 제대로 가고 있다는 안심은 조금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성과가 보이면 '또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하나' 다음 단계의 아이디어를 짜내 본다.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들으며 자라고,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항상 아이들 눈에 부모의 모습에서 인생의 지침이 되었다는 생각이 스며들도록 의식적으로라도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렇게 노력을 했다.
항상 책을 가까이하고 편애하지 않는 정성 어린 애정을 듬뿍 주었으며 상황이나 의문이 생길 때는 어리지만 하나의 인격체이며 부모 나이가 되었을 때는 우리보다 훨씬 더 성숙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많은 대화와 질문으로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말할 수 있도록 어떤 상황을 늘 제시해 주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항상 물어보았다.
어린 나이에 무슨 제대로 된 판단이 있을까만은 뜻하지 않은 상황이 생겼을 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미리 연습을 시켰다.
아이들은 다행히 그런 상황극을 재미있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눈 대화 속에서 아이들의 성향을 좀 더 깊이 파악하게 되었으며 어쩌다 엉뚱한 행동이 나왔을 때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주기도 했다.
어려서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차원에서 일뿐이다.
그때 아이들은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하기도 한다.
각자의 느낌을 얘기한다. 질문은 항상 아이들에게 먼저 한다. 먼저 질문을 해야 아이들 생각이 어디까지 인지를 알기에 눈높이 설명이 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엄마의 생각을 듣게 되고 엄마는 아이들의 생각을 알게 된다. 그렇게 서로의 생각과 의도를 한 뼘씩 키워나갔다. 이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상대방의 생각을 읽고 존중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항상 아이들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기에 우리 아이들의 장단점을 잘 알아 더 좋은 방법이나 방향을 찾기가 수월했다.
남보다 앞서가라는 마음은 없었다.
그저 모나지 않고 배려심 많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주기만을 바랬다.
그래서 아이들과 보내는 모든 시간들이 경이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간이 되어 나의 에너지로
하루하루가 늘 의미 있는 날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감사한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갔음을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