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괜찮아야 하는 시기였다

by 숙희

기나긴 치료가 끝나고 매주 가던 외래는 몇 달에 한 번으로 늘어났다.


교수님께서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일반 아이들처럼 키우며 지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괜찮아야 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천천히 그리고 아주 집요하게

불안이라는 어둠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남편은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로 이직을 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도전이기도 했지만,

치료하는 동안 꽤 많은 비용을 지출했기에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남편은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기 위해 늘 뛰어다녔다.


한 사람은 아이 곁에 남아 모든 변화를 혼자 감당했고,

다른 한 사람은 머나먼 타지에서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랐다.


퇴근 후의 통화는 필요한 말만 짧게 나누었다.


“오늘은 어땠어?”

“괜찮아.”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충분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둘 다 일을 하고 있었고, 각자의 하루를 끝내기에도 벅찼다.

서로의 힘듦을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다.


아이가 잠든 뒤에도 밀린 집안일로 잠들지 못하던 밤,

아픈 아이 곁에서 밤새 간호하던 날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야근을 하던 시간들,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에 이직을 후회하던 순간들,


서로의 피로를 눈치 보느라 끝내 꺼내지 못한 말들이 쌓여 작은 균열을 만들어냈다.


쉼 없이 이어진 역할들,

기대고 싶을 때 곁에 없는 시간들,


미래를 위해 달려야만 하는 상황.

괜찮은 척해야만 유지되던 생활.


그 모든 것들이 쌓여 마침내 큰 파열음을 냈다.


이대로는 함께 갈 수 없었다.


더 잘 해내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이 글은

불안을 없애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불안이 우리 부부를 어떻게 조금씩 잠식해 왔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버티고 또 견뎌낸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아이의 투병 기록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입니다.

네이버 화요웹툰 <콩에서 새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