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것

1. 우리의 마음정원

by 숙희

첫 수업 날, 조심스럽게 상담실의 문을 열었다.

따뜻한 색의 조명이 감도는 방 안은 포근한 향이 가득했다.

낯선 공간이 신기한지 콩이는 들어서자마자 이곳저곳을 탐색하기 바빴다.


​"콩아, 조심해야지. 만지면 안 돼."

나는 혹여 콩이가 실수를 하거나 물건을 망가뜨릴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아이의 뒤를 쫓았다.

그런 나를 보며 상담 선생님은 인자하게 웃으셨다.

"괜찮아요, 어머니. 콩이가 이 공간과 충분히 인사할 시간을 줄까요?"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콩이는 한참 동안 재미있는 소리가 나는 북을 두드리고,

맑은 소리를 내는 풍경 아래서 까르르 웃었다.


호기심이 충분히 채워진 뒤에야 아이는 순순히 내 옆자리에 앉았다.

벽면에는 '마음 정원 꾸미기'라는 제목의 PPT가 띄워져 있었다.


​"우리의 마음은 작은 정원과 같아요.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두면 잡초가 자라고 황폐해지죠.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이 마음 정원을 정성껏 가꿔주어야 한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만히 내 마음속 정원을 들여다보았다.

출산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시작되었던 간병의 시간들.

아픈 배를 부여잡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쪽잠으로 간신히 버티던 나날들.

나는 여전히 그 시간 속에 갇혀 살고 있었다.


나의 정원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가시덤불이 무성한 황무지 거나,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할 만큼 척박하고 메말라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씁쓸해졌다.


​이어진 활동은 '반짝이 물병' 만들기였다. 투명한 병에 물을 채우고,

그 안에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상징하는 반짝이 가루를 넣어보는 시간이었다.


​"이 반짝이들이 내가 바라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넣어볼까요?"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무색하게 콩이는 신이 나서 눈앞의 가루들을 털어 넣기 시작했다.

빨강, 노랑, 초록... 콩이의 병 안에는 온갖 색깔의 반짝이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였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흰색과 하늘색, 그리고 파란색 가루를 조금씩 섞어 넣었다.

차갑고 고요한 색들.

어쩌면 내가 가장 간절히 바랐던 건 소란스러운 욕심보다는 그저 평온한 안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왜 이것만 넣어요?"

"음... 엄마는 바라는 게 별로 많지가 않아서 그런 가봐.

우리 콩이는 반짝이를 아주 많이 넣었네? 어떤 것들을 생각하면서 넣었어?"

"엄마! 나는요, 운동도 잘하고 싶고요, 책도 많이 가지고 싶어요. 그리고 또...."


이제 막 작은 나무로 자라나기 시작한 아이의 바람은 형형색색의 반짝이들처럼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 생기를 가지고 병 속에서 반짝였다.


​"자, 이제 물병을 세차게 흔들었다가 가만히 내려놓아 보세요.

그리고 반짝이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그저 바라보는 거예요."


​병을 흔들자 물속은 순식간에 혼돈에 빠졌다. 사방으로 흩어지며 어지럽게 춤추는 반짝이들.

그것은 콩이의 넘치는 에너지 같기도 했고, 내 안에서 수시로 헝클어지는 불안 같기도 했다.

​우리는 말없이 물병을 응시했다. 거칠게 날뛰던 입자들이 중력에 이끌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소란이 잦아들고 다시 투명한 물의 얼굴이 드러날 때까지, 우리는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콩이는 그 과정이 그저 신기한 놀이인 듯 즐거워 보였지만, 나는 여전히 이 활동들이 미덥지 않았다.

​'겨우 이 물병을 바라보는 게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지독한 현실의 문제들이 고작 반짝이가 가라앉는 속도에 맞춰 해결될 리 없다는 회의감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여전히 당장 눈에 보이는 진단서와 그것을 단번에 해결해 줄 처방전을 원하는 성급한 환자였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온 집,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남편이 우리를 반기며 물었다.

"어땠어? 첫 수업인데 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콩이는 거실에서 방금 만든 물병을 다시 흔들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음...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조금 더 해봐야 알 것 같아."


​솔직한 진심이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물병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그 짧은 정적이, 하염없이 내려앉던 반짝이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이의 투병 기록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입니다,


네이버 화요웹툰 <콩에서 새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