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길이었다

3. 시작의 문턱

by 숙희

원장님의 안내를 따라 바로 옆 상담실로 향했다.

그곳은 병원 진료실과는 또 다른, 묘하게 안온한 공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처음 마주한 상담 선생님은 온화하면서도 어딘가 단단한 심지가 느껴지는 분이었다.

그 단단함이 나에게는 오히려 묘한 신뢰감을 주었다.


​선생님은 차분하게 마음 챙김에 대해 설명하며,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물으셨다.

나는 콩이가 아팠던 긴 터널의 시간부터, 현재 내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분노와 지독한 자책까지 두서없이 쏟아냈다.

누군가에게 내 밑바닥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경험이 벌써 두 번째라니.

미세하게 떨려오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나는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수치심을 애써 숨겨보려 노력했다.

​중구난방으로 뱉어내는 나의 고백을 끝까지 기다려 주신 선생님은 나를 향해 이렇게 되물으셨다.


​"숙희 님, 저희가 숙희 님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드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 문제들을 지혜롭고 올바르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 수는 있습니다.

저희는 이제부터 그 방법을 배우기 위한 수업을 시작할 거예요."


​당장 정답을 얻고 싶었던 나에게 '배움'이라는 단어는 조금 아리송했다.

약이 즉각적인 통증을 가라앉히는 진통제라면, 마음 챙김은 나에게 어떤 구원이 되어줄까.

과연 이런 과정이 우리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스쳤다.


하지만 나에겐 망설일 여유조차 없었다.

이대로 멈춰 서 있다가는 정말로 콩이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만 같았기에.

"현재는 금요일 저녁 6시만 가능하네요. 이 시간은 어떠세요?"

금요일 저녁 6시.

일주일의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고, 주말 육아를 위해 체력을 미리 보충해 두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나는 절박했고,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 문을 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톡으로 사전 체크리스트가 도착했다.

심각한 심리 검사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질문들은 의외로 가볍고 다정했다.

콩이가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좋아하는지,

명상처럼 차분한 시간을 좋아하는지,

어떤 간식을 즐겨 먹는지 묻는 일상적인 취향 조사였다.


​하지만 그 사소한 질문들 앞에서 나는 다시금 습관적인 걱정에 빠져들었다.


'워낙 안 먹는 아이라 고를 간식 취향조차 없는데...'

'말도 많고 질문도 많은 아이인데, 혹시나 수업을 망치지는 않을까.'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어느새 '문제점'부터 찾아내고 있었다.

콩이라는 작은 우주를 탐험하기 위한 지도를 펴놓고도, 정작 나는 지도 밖의 험로만을 상상하며 미리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설문을 다 작성하고 전송버튼을 눌렀지만, 나는 한참이나 빈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누구보다 편협한 시선으로 콩이를 바라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구나.

비뚤어진 내 시선을 바로잡기 위해, 그리고 내 안의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이에게 다정한 예고를 건네는 일뿐이었다. 콩이가 느낄 낯섦을 나의 다정함으로 미리 채워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담아 일주일 동안 콩이에게 여러 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콩이야, 이제 금요일마다 엄마랑 같이 재미있는 놀이 선생님을 만나러 갈 거야. 거기서 콩이가 좋아하는 놀이를 엄마랑 같이 할 거야."


"엄마! 그곳에서는 무슨 놀이를 해요? 나는 수영이랑 축구를 좋아해요! 발레도요!"


​신이 난 얼굴로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들을 나열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다짐했다.

이번만큼은 내 조급함으로 아이를 재촉하거나 내 틀 안에 가두지 않겠노라고.

드디어 약속된 금요일 저녁.

일주일간의 소란을 뒤로하고 나는 콩이의 작은 손을 꼭 잡은 채 다시 상담실 문 앞에 섰다.

차가운 복도의 공기와 대조적으로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불빛이 묘한 설렘을 주었다.

동시에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심장 끝을 건드렸다.

우리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시 숨을 골랐다.

이제 막,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으려는 참이었다.



아이의 투병 기록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입니다.


네이버 화요웹툰 <콩에서 새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