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을 가리지 말게 : 박열

역사 그 자체를 재현하고 싶었다.

by Wenza

고대 그리스 철학자 중에 괴짜로 평판이 자자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 세계를 제패했던 황제 알렉산더에게 밑도 끝도 없는 도발을 했던 남자, '디오게네스'. 그의 별명은 '개새끼'였으며, 괴짜 같은 행동에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었다. 그는 문명에 대해 거부하고, 생명으로의 본질적 모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면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다. 영화 <박열>을 보면서 그를 떠올렸던 이유는 '디오게네스'의 유명한 일화 때문이다.


당시 이집트의 파라오, 페르시아의 샤한샤, 마케도니아의 바실레이아라고 칭송받았던 대왕 알렉산더은 디오게네스의 소문을 듣고 그의 모습을 보길 원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명령에도 응하지 않았던 디오게네스였고, 결국엔 알렉산더 대왕은 디오게네스를 찾아가게 된다. 일광욕을 하던 디오게네스 앞에 알렉산더 대왕이 서서 말한다.


"나는 그대가 원하는 것을 모든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말한다.


"햇빛을 가리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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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볼 때, 일본의 제국주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시대 속의 독립운동과 저항운동을 다루는 매체들을 다양하게 접해왔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항일운동은 우리에게 낯설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에 이어서 일본 내에서의 제국주의에 대한 조롱과 저항의 상징이었던 시인이자 잡지 발행자인 '박열'을 재현해낸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화를 실화에 기초했으며, 역사적 고증이 확실하다."

"모든 인물은 실제로 존재했다."


역사를 다룬 영화는 실화를 강조하지만, 단호하게 '역사'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준익은 아나키스트인 박열의 의지를 담아 단호하게 밝힌다. "이 영화는 역사다"라고. 영화 속의 박열은 아나키스트, 즉 무정부주의자다. 폭력성과 대상화를 거부하고, 존재 그 자체에 가치를 두는 데 목적이 있었다. 박열은 영화 내내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항일운동을 한 사람이 아니고, 생명 그 자체를 지키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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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일제시대를 다루면서, 한국과 일본의 대립적 구도가 아니라 파괴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구도를 만들어 낸다. 그렇기에 오히려 항일운동보다는 오히려 체제전복적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열은 비상식적인 일본의 조선인 학살과 일본이 발전하고자 하는 선진 문화 사이의 모순을 드러내려 한다. 앞서 말한 디오게네스와 박열의 공통점은 여기서 떠오르게 됐다.


그 둘의 모습은 문명이 갖고 있는 자유를 향한 폭력성을 여지없이 비판한다. 알렉산더의 제왕적 권위는 디오게네스의 한 마디에 아무것도 아닌 권위가 되어버렸다. 박열과 후미코의 이 사진 또한 제국주의에 대한 조롱이자 조선이 대한민국이 될 수 있게 한 힘이 되었다. 마치 영화 <박열>은 시간 속에 감춰진 빛을 드러내며 말하는 듯 하다.


햇빛을 가리지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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