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의 실존을 마주한다. 작가 이승호, 신승우
(본 전시는 9월 12일부터 시작합니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공허는 우리의 감정을 흡수하고, 무한한 시간으로 끌어들인다. 공허함으로 인한 불안은 우리를 잠식하여 심연 깊은 곳으로 인도한다. <grain of solitude>는 우울감이나 권태로움에 잠식되지 않고, 그 순간에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 예술로 승화한다.
우리는 ‘밝음’과 ‘행복함’ 만이 환영받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고여만 가는 깊은 감정의 골짜기를 우리는 말하지 못하고 언제나 감춰둬야만 했다.
텅 빈 위로 대신 우리가 찾은 것은 깊은 숲이 주는 평온이었다.
외면해오던 감정들을 숲 속에서 마주 보았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사진으로 표현하지 않았더라면 더 깊은 곳에 침전됐을 감정들.
사진이라는 표현 수단을 통해 이 감정들을 오롯이 바라보고 말할 수 있었다.
마음을 어지럽히며 흩어지던 단어들이 조금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1.32라고 수치화해볼까?
나와 잘 맞는 사람은 1.2나 1.5쯤 되겠네
그럼 정-말 잘 맞는 사람은?
1.34는 될 거야
안 맞으면 0.06이나 4.87 쯤 되겠지...
있지 요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는 소수점의 차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근데 작은 차이든 큰 차이든 간에
그 조금의 간극에서 오는 외로움이 있는 것 같아
이걸 모두 수치화시킬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이게 누구의 탓도 아니니까
그럴 때마다 사진기에 기댔던 것 같아
그리고는 식물에게서 답을 잠시 빌려왔어
나는 이 친구들의 '결'이
사람의 피부와 참 닮아있다 생각하거든?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가까이로 다가갈수록
저마다의 상처도 보이고
더 다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방어기제도 보여
이 친구들한테서 그걸 본 이래로 난 이게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찍었던 것 같아
그러면 내가 수치화시키지 못하던 외로움들이 조금은 치료가 돼
아 사실 치료보단 마취 주사나 항생제에 가까워
근데 아무렴 어때?
이렇게나마 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Jeju, 2019 ~ 2020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어수선하게 된 숲, 곶자왈.
용암층 위에 형성된 불모지에서 다들 엉킨 채 잘도 지내고 있다.
가장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생명이 피어난다.
깊고 깊은 권태, 그 끝을 모르는 슬픔
시작점과 끝점을 알 수 없는 우울
짙은 여름이 이어지던 밤
저 멀리서 흩어져오는 파도 소리와 짠내
흐릿한 마음들, 흐릿한 이름들...
[ solitude ] 시리즈는 가장 개인적인 과거의 시간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깊고 깊은 권태의 늪에 빠져 우울증을 겪던 중 제주도로 떠나 하염없이 숲길을 걸었습니다. 걸음을 따르다 보니 깊은 곶자왈에서 길을 잃고 고립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흔적 하나 없는 원시림 속에 완전히 고립되니 마음에는 전에 없던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깊은 마음속 우울을 닮은 숲 속에 서있으니 그제야 마음은 안정을 찾았습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우울은 검은 구체를 닮았습니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우울의 모습은 다를 테지만, 저에게는 검은 구체였습니다. 내 안의 그 구체를 없는 척 무시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내 안의 우울을 인정하고 그 우울을 마주 봤을 때 비로소 마음속에 작은 고요가 밀려왔습니다. 우울로부터 도망쳐도 만나는 건 우울밖에 없었으니 그저 받아들이고 안아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의 우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포토그래퍼 이승호, 신승우는 자연, 식물을 통해 본인의 실존을 마주한다. 이승호 작가는 식물의 '결'에서 자신의 흔적을 발견하고, 신승우 작가는 오래된 숲이 주는 아우라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