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상상으로 남는다 : 빅 피쉬

by Wenza

판타지 영화의 대부라고 부를 수 있는 팀 버튼의 영화 《빅 피쉬》. 그의 대표작은 웬만하면 다 알고 있듯이 《유령신부》, 《화성침공》, 《찰리와 초콜릿 공장》등 많은 상상 세계를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팀 버튼은 상상을 단지 관념 속에 가두지 않고, 스크린으로 구현해서 상상의 능력을 보여주어 상상과 현실의 다리 역할을 함으로써 상상과 현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빅 피쉬》는 아버지 블룸이 아들 윌에게 전해준 자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아들은 성인이 되어 사랑하는 이와 만나 이제 곧 자신도 아버지가 될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 아들은 아버지의 상상 섞인 모험담에는 질린 상태. 매번 동일한 상상의 이야기만 가득하신 아버지의 모습은 윌에게는 거짓되어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진실된 아버지의 모습을 알고 싶은 게다.


영화는 두 가지 물음은 던지는 데, 하나는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상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영화를 꿰뚫수 있다고 본다. 누구든지 사실,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객관성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개인이 기억하는 단편적이며 감정적이고 조작적인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에 대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단편적이고 조작적인 미디어와 진실에 집착하는 음모론의 모습으로 우리 사회를 보게 된다.



우리가 접하는 신문, 뉴스, SNS 등 다양한 언론매체나 팟캐스트를 통해 편향적이고 오해스러운 보도들을 접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진실에 대한 규명을 요구하게 되는데, 요구하는 이가 만족하는 대답은 거의 듣기가 어렵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이런 말을 했다는데, "의심을 할 수 있는 데로 의심하라. 의심할 수 없는 것을 만날 때까지" 이 정신이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있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아들 윌이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하다. 객관적 사실의 요구이다. 해석적 요소가 배제되어 현상만 기술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윌은 아버지의 삶을 객관적 현상만으로 기억하길 원하는 거다. 그런 윌에게 진실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상은 객관적 사실에 해석적 요소를 덮어 사실을 흐리게 만드는 장치이자 허구다.



과거로부터 '상상'이란 개념은 예술계에 있어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고대 그리스만 해도 상상은 판타지아, 즉 모방의 모방으로 가치가 없었다. 중세에는 더욱 심했는데, "마음대로 분리시키거나 재결합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바로 이 자유 때문에, 상상은 오히려 의혹의 원천으로 간주" 되었다고 다.(오병남, 미학강의 中) 덕분에 예술의 원천인 상상의 힘은 17세기나 돼서야 비합리주의자들의 출현으로 이성적인 과학기술과 감성적인 예술은 동일시되어서는 안된다는 흐름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엔 아들은 아버지의 상상의 이야기들은 현실로 이뤄지는 기이한 현상을 보게 된다. 윌은 아버지의 이야기들이 결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아버지가 말했던 상상의 이야기와는 다른 현실이지만. 이렇게 팀 버튼은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하나로 만든다. 그렇게 그는 빅 피쉬를 통해 자신의 모습, 우리에게 권유하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아버진 자신의 이야길 너무 많이 해서 당신 자신이 곧 그 이야기 자체가 되셨죠. 그래서 이야기는 아버지 덕에 생명을 얻게 됐고 그렇게 아버진 이야기 속에 영원히 살게 되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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