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의 판타지 : 말레피센트

by We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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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말레피센트》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는데, 첫째로 앤젤리나 졸리의 분장한 모습일 테고, 둘째는 우리가 익히 하는 백설공주를 각색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본 영화는 백설공주의 마녀인 말레피센트라는 요정이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떠한 결과든 결과가 있기 위해서는 원인이 있다.《말레피센트》는 마녀의 악행도 애초에 원초적인 죄, 선험적인 죄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생각부터 시작된다.


영화 속 세계관 속에서는 오래전부터 자연과 인간은 구분되지 않았었다. 오히려 자연 속에 인간이 있는, 균형의 세계, 질서의 세계이다. 자연과 인간은 융화된 관계였고, 자연의 위엄에 인간은 겸손하게 된다. 그러나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인간은 항상 위대한 자연에게 도전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 中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설공주에서는 마녀는 욕망과 질투가 가득한 사람이다. 백설공주의 미모를 질투해서 죽이는, 어찌 보면 전통적 여성성의 근원을 질투에 두고 있는 인물이다. 본 영화에서는 말레피센트는 실연의 주인공으로 그려진다. 그녀에게도 사랑이 있었는데, 어릴 때 숲으로 놀러 온 스테판이었다. 하지만 스테판은 야망에 사로잡혀 말레피센트의 날개를 원했고, 잠든 사이에 날개를 잘라 국왕에게 바친다.


말레피센트의 저주


말레피센트는 복수에 사로잡힌다. 인간에 대한, 아니 사랑에 대한 배반감이었다. 그녀는 너무 순진했고, 인간은 너무 사악했다. 스테판은 말레피센트의 날개에 대한 보상으로 공주와 결혼하게 되었고, 국왕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녀는 스테판이 국왕이 되어 아이를 갖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딸 오로라가 태어날 때 아이에게 저주를 내린다. 이 부분이 동화 백설공주와 겹치는 부분이다.


마법의 숲을 공격하러 온 헨리 왕과 그의 군단에게 말레피센트가 말합니다.

"더 이상 앞으로 다가오지 마라!"
그러자 헨리 왕이 말합니다.
"난 왕이고, 괴물 말을 듣지 않는다!"
"넌 내 왕이 아니다!"


대화에서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욕망의 간극을. 결국 자연과의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무언가를 지키려는 자와 정복하려는 자. 여기서 인간은 정복의 존재, 즉 소유의 욕망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렇듯 영화 속 모든 갈등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갈등의 해소는 진정한 사랑에 달려있다. 역사적으로 '불안'의 대안은 폭력적인 방법이었다. 심판하고, 두려움의 대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는 것. 타국이나 타공 동체가 우리에게 위협이 될만한 전력을 갖고 있다면, 그에 대응하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처럼.



불안의 원인은 '무지'에서부터 시작된다. 타인에 대한 무지는 경계를 낳게 되고, 경계는 무지에 대한 대비를 낳게 되는 것처럼. 이렇게 서로 간의 벽이 쌓이게 된다. 스테판과 말레피센트의 첫 만남도 그렇다. 타인에 대한 무지로 인한 불안이 아닌 상대를 알아가려 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동시에 불안감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불안에서 벗어나는 가장 커다란 방법은 진정한 사랑으로 그려진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에.


겨울왕국 中 한스왕자와 안나


백마 탄 왕자라는 이미지는 백설공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첫눈에 반하는 로맨스에 대한 사랑에 대한 환상의 오랜 역사는 디즈니 스스로 정리하기 시작한다. 겨울왕국의 백마 탄 왕자의 한스도 오히려 욕망에 사로잡힌 악의 모습이었다.


앤젤리나 졸리의 존재감은 영화 전체를 덮는다. 그녀의 연기 범위가 참 넓다는 생각이 든다. 첩보 액션에 《원티드》라던지 《솔트》, 다큐의 《제인 구달》, 《월드 오브 투모로우》까지 정말 대배우라고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설공주 동화는 궁전에서 쓰인 역사기록물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말레피센트》는 현실 이야기 같다. 한 사건의 이면에 대한 판타지는 언제 봐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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