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는 많은 영화를 통해 인간 내부에 있는 광기를 신묘막측하면서 동시에 날 것의 광기를 그려왔다. 인간의 고유한, 아니 생명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자기분열의 욕구, 쾌락의 재생산에 향한 광기와 폭력.
영화《아가씨》의 개봉을 앞두고, 나는 원작인 《핑거스미스》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와 원작과의 차이와 구별은 명확해야 한다. 두 작품은 같지만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에. 무엇이 정답일 수 없다는 거다.
본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유쾌하다. 그러나 원작을 읽어가면서 기대하고 준비했던 것에 비해서 영화는 너무나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돋보이는 미장센들이 인상 깊다.
숙희와 히데코의 정사 장면 중에서 서로를 애무하며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무엇을 의도했든 人(사람 인)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두 여자는 결코 비정상적 존재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이와 대비되어 오히려 여성을 대상화하며, 성적 노리개 정도로 생각하는 무리들이 더욱 비정상적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여성을 소유하지 못한다.
영화《베스트 오퍼》에서 미술 감정사인 올드만은 가질 수 없는 여성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자신의 비밀의 방에 수없이 많은 값비싼 초상들을 수집한다. 온갖 음란하고, 선정적인 책들을 수집하는 코우즈키 또한 어떤 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점이 원작과 큰 차이를 갖고 있는데, 원작에서는 장인의 모습이었으나 코우즈키는 성도착증 환자처럼 그려진다.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도 마치 우리 사랑은 아무렇지 않은, 다른 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런 면에서는 한국 메이저 영화에서 레즈비언의 사랑을 수면 위로 올린 셈이다. 그러나 원작의 모드와 수의 감정은 섹스로만 가득하지 않다.
모드와 수의 섬세한 감정선을 박찬욱식 날것의 욕망으로 풀어낸다. 나는 이 점에서 《아가씨》가 아쉽다. 에로틱과 섹스, 시각적 자극으로 가득했다. 마치 포르노처럼. 무척 놀라운 것은 영화가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