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네마 천국》의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영화《베스트 오퍼》는 최고의 미술품 감정사이자 미술경매사인 올드만이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가득 찬 한 여인의 의뢰를 받고, 그의 인생이 최대의 변화를 맞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베스트 오퍼는 최고 경매가를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최대의 것으로 최대의 가치를 존중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성서에는 예수의 비유 중 밭을 사는 이야기가 있다. 이 또한 베스트 오퍼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최상의 가치를 위해 거는 것이다. 이는 최상의 가치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최상의 가치에 대한 완전한 배반이 있다면 어떨까?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신약성서 마태 13:44~46)
신성모독,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신성모독'이라는 표현을 통해 수많은 이들을 살해했다. 이는 자신의 신뢰에 대한 신앙에 대한 배반을 용납하지 않는 행위다. 올드만은 항상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는 어릴 적 버림받았던 기억과 그를 위로했던 예술을 통해 대인기피성을 피할 수 없었다. 타인에 대한 신뢰의 부재, 그것이 그를 만들었다.
어느 날 한 여인(클레어)에게서 아버지가 물려주신 예술품과 가구를 감정받고 판매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직접 만나지 않고, 큰 저택의 비밀방 문 사이를 두고 계약을 하게 된다. 그녀는 광장공포증을 갖고 있으며,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 어찌 보면 올드만과 동일하다. 그도 그녀도 타인에 대한 공포로 인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 그런 공통점 때문일까? 그와 그녀는 서로 간의 마음을 터놓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최상의 가치를 직면할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한다. 어떤 이는 최상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최상의 가치인 생명을 내어놓는 경우도 있으며, 다른 이는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걸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포장하든,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에 대한 보장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도박이다.
영화는 18세기에 만들어진 보캉송의 말하는 로봇의 부품을 수수께끼 저택에서 조금씩 찾아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그려진다. 말하는 로봇은 아마 실제로 말하진 않고, 움직임만 있었을 거란다. 말하는 건 사람의 속임수였다고 하는데, 이처럼 영화 저변에는 진짜와 가짜의 그림자가 가득 깔려있다.
올드만은 진품과 위작을 구별하는 데 있어서 천재적인데, 그는 위작에 대한 가치를 내리깔지 않는다. 위작만을 작업하는 이름 없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품 속에서 새로운 창작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진품이길 원하는 위작의 성질을 원하는 것이 아닌, 진품 속에서 또 다른 진품을 만들어내는 위작의 영혼을 의미한다.
필자는 지금까지의 영화 중에 《로마의 휴일》을 제외하고 이렇게 몰입감이 넘치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잠깐 보려다 새벽 3시까지 봤다. 도저히 영화를 중단할 수 없었던 매력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와 알 수 없는 감정의 환상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