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속에 영화를 새겨 넣는다.
미디어는 보는 이에게 설득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애초에 설득력이라는 표현은 상대의 흥미를 돋우는 능력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의 여부가 좋은 미디어인지 아닌지를 나눌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물론 좋고 나쁨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말이 많겠지만 말이다.
과거의 보드리야르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가상과 현실의 모호성에 대한 예지적 선언을 한 적이 있다. 복제된 무언가는 이제 원본보다 더욱 원본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몇 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디지털 스크린으로 전시된 명화들처럼, 이제는 저 멀리 떨어진 곳의 명화도 더 가까이, 자세히 볼 수 있다. 원본으로서의 가치는 점점 멀어져 가고, 전통은 새롭게 뒤집히는 세상이다.
영화 《라라랜드》를 보면 현재를 배경으로 하지만, 색감이나 텍스트 그리고 과장된 연기는 오래된 영화들을 생각나게 한다. 과거의 영화는 현실과 다르게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이상적인 무언가를 그리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영화도 '설득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 환상을 그려야 한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판타지도 그에 따른 논리와 설득력의 유무가 '유치'한 지 '재밌는지'에 대한 기준이 된다.
이런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시대에 더불어 현실의 각박함 속에서 감성의 결핍은 필연적이다. 영화는 더더욱 현실적인 환상을 그려야 했다. 그러나 데미안 채즐은 이런 흐름과 다르게, '환상 그 자체'를 그린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지 않는가? 영화는 다시 영화다워진다. 현실 속의 판타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더욱 더 환상적이다.
영화는 한 여인과 한 남자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재즈 피아니스트다. 그러나 재즈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다는 현실 속에서 그는 레스토랑에서 징글벨을 연주해야 먹고 살 수 있다. 미아(엠마 스톤)는 파티가 끝난 뒤 차가 견인되어 집까지 걸어가게 된다. 그러다 어디선가 들려온 한 연주곡에 홀려 레스토랑에 들어온다. 이게 여느 로맨스 영화와 다르지 않은 진부한 시작이었다.
영화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연인의 관계를 그린다. 어쩌면 '꿈'과 '사랑'의 갈등은 로맨스 영화에 평범한 주제다. 어찌보면 평범하고 너무나도 평범한 조건 속에서 영화는 판타지를 그린다.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되는 것은 너무 아름다운 선율과 장면들의 로맨틱함이다.
《라라랜드》의 압권은 진부한 주제 속의 이야기를 음악 속에 새겨놓는 연출이다. 이는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연주 장면은 음악 한곡에 인생을 담아내는 기적을 경험하게 한다.
음악 속의 마음을 스크린에 그려내는 것, 이 영화가 가능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