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보고 싶다. 아버지.
Biutiful. 무슨 뜻인지 검색해봤지만, 영화 제목 말고는 아무 뜻도 나오지 않았다. 문득 떠오른다. 유스발(하비에르 바르뎀)에게 뷰티풀 스펠링을 알려달라한 딸의 말이 기억났다. 그러자 유스발은 소리 나는 대로 쓰면 된다고 가르친다.
우리나라에서 유럽이란 곳은 낭만적이고, 전통이 잘 지켜진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TVN에서 <꽃보다~> 시리즈에서 유럽 여행을 다룬 뒤로 유럽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미화된다. 본 영화를 보면 배경이 스페인인지 멕시코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불안한 치안을 보여준다. 더불어 범죄의 중심에 유스발을 세워둔다. 그는 밀입국자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마약을 밀매한다.
영화는 범죄자로서의 유스발의 모습과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유스발을 그린다. 이 두 가지의 정체성이 유지되는 근원적 이유는 '생계'라고 요약할 수 있다. 생계란 "살아갈 방도"를 뜻한다. 물론 어떠한 절박함도 범죄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유스발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재현하려 한다. 이런 모습에 자신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집착이다. 어쩌면 원망일 수도, 그리움일 수도 있겠다. 자신이 받지 못한 따듯함, 다정함을 자녀들에게 유스발은 후회 없이 넘겨주고 싶다.
유스발에게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와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이 죽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좋은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기억되고 싶었다. 그러자 나는 김정현 작가의 소설 <아버지>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는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한 가정을 유지하게 하는 돈줄이었다. 새벽 일찍 출근해서 가족들 잠잘 시간에 들어오는, 그저 같이 잠만 자는 존재로 굳어있다. 그런 아버지가 직장을 잃게 된다면, 개인에게도 혹은 가족에게도 존재 가치의 흐릿함만이 생기곤 한다. 소설 <아버지>가 한국 사회 속에서 소비되는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부정적인 측면에서 그려낸 것이다. 결국 소설 끄트머리에서는 죽은 아버지가 끝까지 아버지로 남기 원했다는, 그리고 자녀들과 아내는 후회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됐던 걸로 기억된다(확실하지 않음).
한국 드라마 장르의 영화는 억지 눈물을 짜내는 형식과 설정을 종종 보게 된다. 이와 같이 과장되고 인위적인 극을 우리는 종종 신파극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본 영화가 보여주는 조건과 설정은 신파극이다. 비극적이고, 가슴이 먹먹하다. 설정들은 너무 잔인하다. 그러나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절망까지 느껴진다.
그럼에도 계속 보는 건 조금이라도 아름다운(biutiful) 세상을 쥐어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아, 보고 싶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