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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Apr 04. 2016

디알못이 본 리빙 디자인

일상을 낯설게 하다


일상을 낯설게 하다


 리빙 디자인 페어를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아트페어에서 운 좋게 아트 딜러 경험을 한 적이 있었지만 디자인 페어는 처음이었습니다. 경제적 상류층의 특별한 마켓으로 여겨졌던 그것보단 훨씬 대중적이었어요. 예술성을 삶 깊숙한 곳까지 끌고 들어가더라고요. 리빙 디자인은 제품을 보는 것만으로 새삼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의미를 곱씹게 하고,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일상에 신선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사실 감상문 과제 때문에 억지로 감상을 만들어 내느라 계속 머리를 굴려 집중은 못했습니다만, 디자인 페어를 관람하는 내내‘일상을 낯설게 하다’라는 문장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사실 이 문장은 기호학을 처음 배울 때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던졌던 명제입니다. 기호학이란 인간이 만든 모든 것 (사물이든, 언어든 )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와 의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교수님이 보면 틀렸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주변의 모든 것을 거리를 두고 한 번 생각해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리빙 디자인 페어에서 디자인을 통해 저는 일상을 낯설게 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리빙이라 부를 수 있는 모든 군의 다양한 제품들은‘난 이렇게 예쁜데 네 일상은 어떠니?’라며 내게 물으며 구경하는 이의 삶을 반추하게 합니다. 동시에 엄청나게 구매욕을 자극합니다. 생활 곳곳에 쓰일 수 있는 물건들은 소비자들의 잠재적 욕구까지 찾아냅니다.

‘아, 소화기도 저렇게 예쁠 수 있구나. 우리 집 소화기는 어땠지?’

 

아니 뭐, 일반 가구나 그릇은 그렇다 쳐도, 소화기랑 옷걸이 따위가 원래 그렇게 예쁠 수 있는 것이었던가 싶었습니다. 구경하는 이들은 습관처럼 흘려보내던 자신의 일상을 새삼 낯설게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러고는 그리고는 이 매력적인 디자인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나의 일상이 드라마 세트장 속 장면처럼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란 헛된 상상을 품습니다.


 


주시세리프라는 이름의 레몬착즙기


의식주라는 세 글자의 인간 생활을 풍부한 의미로 넘치게 하는 것

 주시 세리프를 디자인한 필립 스탁은  '내 착즙기는 레몬을 짜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화의 시작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제품에 하나하나 녹여놓은 의미 때문에 사람들은 그 선의의 의미를 주고받으며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네, 제가 디자인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이론 디자인 수업을 통해 위대한 디자이너들의 명언을 종종 접했지만 이제껏 중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종종 디자인적 관심사를 통해 내가 가진 물건의 의미를 다른 사람과 나누며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주시 세리프는 자신이 제품에 녹여낸 디자인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실제 사용자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이 가지는 문화의 본질이기도 하죠. 그게 과하면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의미를 두는 행위 자체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리빙 디자인 페어에서 봤던 제품들 또한 인간의 삶을 한 차원 더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들이었습니다. 의식주라는 세 글자로 단정 지어질 수 있는 인간의 생활을 풍부한 의미로 넘치게 하는 것, 이것이 제가 느낀 리빙 디자인입니다.



  엄마를 위해 예쁜 마그네틱을 하나 샀다. 문득 냉장고에 붙어있는 마그네틱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다이소겠지만 싸구려 플라스틱이었던 것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이제 엄마의 냉장고에는 마그네틱이 아니라 ‘딸이 디자인 페어에서 사다 센스있는 마그네틱'이 붙어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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