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더 어려운
이태원 참사 후 설명할 수 없이 마음이 복잡했다. 사태를 받아들이면서 선명해지는 슬픔과 절망감 외에도 이상하게 두려움이 함께 들었다. 내가 안 봐도 될 문장들을 곧 보게 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댓글일 수도 SNS일 수도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다 분명 마주칠 것 같았고 실제로 금방 만났다. ’그러게 왜 놀러 가서’ ‘우리가 언제부터 할로윈을 챙겼다고’ ‘근데 언제까지 슬퍼해?’
기사 댓글, 유튜브 영상 댓글, 추모하기 위해 찾아간 이태원 1번 출구 길거리. 글로 음성 언어로 접하기 싫었던 문장들은 내 불안감을 과녁 삼아 너무 쉽게 날 찾았다.
반사적으로 반박하는 말들이 떠올랐다가 의미가 없다 싶어 거뒀다. 그와 같은 말을 하는 이들에게는 대게 무적의 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을 한 개인 잘못이지(거길 왜 가)‘ 나, ’ 산 사람들은 얼른 살아야지 (언제까지 슬퍼해)‘ 같은.
안타까운 감정이 우선 된 말이었겠지만 거길 왜가,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중 일부의 말에는 다른 생각도 비치는 듯했다. ‘난 안 가는 걸 선택했는데 저들은 왜 나와 같은 생각을 못했을까’
참사 당일 지인의 안부를 물으며 많은 사람이 안도감을 느꼈겠지만, 현장에 없었던 자신의 선택에 암묵적 나음을 느끼며 이태원에 있던 이들을 깎아내리는 생각이라면 평소에도 얼마나 많은 다름도 맞고 틀림으로 가려질까 싶었다.
자기 일처럼 슬퍼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은 혼자 혼란스러워했다. 추모의 깊이와 방법에는 무적의 논리가 없는 영역이라 더 했다. 일상까지 치고 들어오는 슬픔을 어디까지 거둬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대한 정신건강 의학회 설명서를 보면서 자신의 슬픔과 애도의 마음에 기준을 세우려고 애썼다. 과한 몰입도 독이 된다고 하니까, 그 조율에 알 수 없는 죄책감도 느껴가면서. 애도를 깊게 하는 사람일수록 죄책감도 더 큰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일상을 살아가다 또 마주친 여러 모진 문장들에서 추모 근처에 지겨움이라는 말이 붙은 걸 볼 때면 여전히 생생한 세월호 사건도 떠오르고 이 반복은 정말 반복인 걸까, 하고 여기저기 생각이 뻗다 말다 했다.
무적의 논리대로 산 사람이 계속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산 사람들이 잘 살기 위해 흔한 말이지만, 집단과 사회가 잘 굴러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집단 잘 굴러가라고 속담도 권한 것 아닐까. 네 발을 다른 사람 신발에 넣어보라고. 사람 발은 고작 두쪽이라 이 세상 신발 다 직접 신어볼 수는 없어도 다른 사람 신발에 내 발이 들어가면 나도 불편할지, 얼마나 아플지 자연스레 상상도 하고 공감도 해야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고.
앞으로도 계속 쉽지 않을 것 같다. 개인의 삶에 애도와 추모가 필요한 사건을 겪어나가는 것도 힘들지만 집단으로서는 아예 다른 차원임을 느꼈다.
어쨌든 고통 앞에서 ‘성숙’하고 싶고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다. 한 개인을 놓고 보더라도 아픈 사건이 벌어졌을 때 회피나 덮고 넘기기는 늘 답이 아니었다.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느꼈다.
집단이 마주하는 슬픔을 돌아보고 성숙하고 현명하게 해소하는 어른 집단이 되려면 한 사람이 거치는 과정보다 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는 걸까 싶다. 혼자보다 집단이 움직이면 더 오래 걸리는 일이 있다.
이태원 참사 후 3주가 되어가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마음 쓰셨던 분들도 모두 안녕하기를 바랍니다.